올해 국정감사장의 일반적 현상은 특히 고양이 앞의 궁지에 몰린 듯한 기관장들이 많았다. 좋지 못한 결과를 냈던가, 애초부터 적임도 아닌데 권력과의 연고로 부임해 있던가 하는 사람들은 한가닥 양심의 발로로 오로지 머리만 조아려 댈 뿐이었다.

 
아예 이럴 용기조차 없는 사람은 해외 출장을 나가기도 했지만 올해 들어서는 국감 직전 사표를 내고 줄행랑 치는 게 새로운 컨셉처럼 자리잡고 있다. 가장 비굴하고 사악한 유형인 후자일수록 정치권력과 관계된 자들이 많다. 이제 새 정부가 들어설 날도 멀지 않았는데 갑자기 야당비율이 늘어난 국회에서 수모를 겪을 이유가 없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자들일수록 국회가 반드시 불러내서 시비를 더욱 엄격하게 가려야 한다는 게 국민들의 여망이다. 이는 각자 지지하는 정파와도 무관한 얘기다.
 
그러나 2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국정감사장은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부터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피감기관장석에 앉은 기관장이 마치 마케팅을 하는 듯 한 확고한 어조로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거침없는 의견을 펼쳐가고 있었다.
 
▲ 22일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는 김용환 수출입은행장. /사진=뉴시스
수출입은행의 김용환 행장이었다. 이 자리에 불려온 사람 가운데 이렇게 편안하게 자기 얘기를 슬슬 풀어나가는 사람은 여태껏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유일했다.
 
금융위원회 대변인도 지냈던 김용환 행장은 김석동 위원장과도 또 다른 ‘유연함’까지 갖추고 있었다. 김석동 위원장은 아주 간혹, 불쾌한 심사가 가득할 때 안경마저 벗어놓고 눈을 번뜩거리며 강경하기 이를 데 없는 발언도 불사한다.
 
한국투자공사(KIC)와 함께 국정감사를 받은 이날 현장에서 오전 중 국회의원들은 수출입은행의 중소기업 지원 축소가 더 얘기가 된다고 보고 김용환 행장에게 더 많은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은행실무에서부터 관련법규까지 마치 수십년간 수출입은행에서만 근무해 온 사람처럼 막히는 것없이 거침없이 대답하는 김용환 행장의 달변에 의원들은 마침내 주 표적을 옆자리 최종석 KIC사장으로 바꾸고 말았다.
 
최 사장이 의원들의 매서운 추궁에 수시로 말이 끊기며 실무진의 자료 보충을 기다리는 모습을 보인 반면, 김용환 행장은 뒤도 안보고 즉석에서 “은행이란 이름을 달고 있는데서 비롯된 오해” “파생상품과 ELS 등으로 중장기 수익률을 높였다” “우리는 보증을 주로 하고 지분 참여는 많지 않다”는 등의 답변을 이어갔다.
 
통합진보당의 김재연 의원은 답변에서 건질만한 것이 없자 “그냥 의혹을 속기록에만 남기겠다”며 아예 김 행장의 답변을 사양했다.
 
스스로 방어능력이 충분하고도 넘침을 인식했는지 회의 중에는 다른 피감기관을 지원하는 이색장면도 연출했다.
 
무소속 박원석 의원이 “아동 착취 문제가 많은 우즈베키스탄 투자를 한국에서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자 김 행장은 “그것은 조폐공사와 관련된 일인 것으로 알고 있으나 조폐공사가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정부가 그쪽(우즈베키스탄)과 얘기해야 할 일”이라고 나섰다.
 
이날 김용환 행장은 “1980년대 중화학공업을 육성하던 시기에 이들 업종의 해외 수출을 직접 지원한다는 의미에서 수출입은행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지만 이제 대외협력은행 등 좀 더 포괄적 이름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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