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낭만파 작곡가 말러는 쓸쓸한 색채로 ‘가을에 고독한 사람’을 노래했지만 녹십자는 가을에 즐거운 제약사다. 혈액제제 및 백신이 주력제품인 제약사로서 독감예방 약인 인플루엔자 백신시장에서 단연 두각을 나타내왔다.

혈액제제와 백신의 해외 수출과 희귀 의약품 시장 등 니치 마켓 진출을 강화하기위해 매출액 대비 R&D 투자비를 종전의 7%대에서 올해는 10% 이상으로 끌어올릴 정도였다.

그러나 올 가을에는 의외의 복병을 만나 고속 성장세가 주춤했다. 인플루엔자 백신의 과잉생산으로 가격이 급락한 탓이다.

인플루엔자 백신 수요는 연간 1500만 도즈( 1도즈는 1회 접종량)정도. 그런데 올해 국내에 공급된 인플루엔자 백신은 2300만 도즈로 50%이상 과잉공급을 빚었다. 지금까지는 백신 공급업체들이 자율적으로 물량을 조절해왔으나 지난해 공정위로부터 이들이 정부조달시장에서 가격 및 물량배정을 둘러싸고 담합했다는 판정을 받아 90억원의 과징금을 물면서 올해는 사전 조율 관행이 깨져 과잉생산이 초래됐다.

그 결과 도즈당 7000원 이상이던 백신가격이 1000원 미만에 낙찰되는 사례까지 나왔다. 인플루엔자 백신은 그 해에 소비하지 못하면 모두 폐기해야하므로 투찰이 빈번했다.

일괄약가인하라는 최악의 조건하에서도 녹십자는 매출-영업이익-순익이 증가하는 트리플 성장세를 이어왔다. 상위권 제약사중 유일하게 매출과 이익이 증가했다.

2분기에는 다른 제약사들의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에 비해 반토막 나는 상황에서도 15%이상 늘었고 매출도 상위권 제약사 중 가장 높은 7.5%를 올렸다.

그러나 3분기에는 매출 성장이 전년 동기에 비해 3%에 그쳤고 영업이익과 순익은 각각 4.3%, 3.1% 감소했다. 제약업계에 매물이 쏟아져 나오고 수익성이 크게 악화되는 최악의 경영환경을 감안하면 선방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녹십자가 공시한 3분기 실적을 보면 매출 2409억원, 영업이익 442억원, 당기 순이익 327억원이다. 2분기에 비하면 매출은 18.5%, 영업이익은 무려 172.2%, 당기순이익은 172.7% 각각 증가했다.

이에 따라 올 1~3분기 누계치로 보면 매출 6176억3400만원, 영업이익 812억7900만원, 당기순이익 611억2800만원을 기록, 매출액 7.2%, 영업이익 4.8%, 당기순이익 5.3% 각각 성장했다.

매출과 이익이 모두 성장세를 보여 제약업계에서는 가장 양호한 실적을 올렸다고 할 수 있다.

녹십자는 4분기에 다시 높은 성장률을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4번째 천연물 신약인 골관절질환 치료제 ‘신바로’의 매출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데다 세계에서 2번째로 개발한 헌터증후군 치료제 ‘헌터라제’가 지난 9월 국내에 출시돼 연내에만도 100억원 이상의 수입대체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미 4억8000만달러 수출계약을 맺은 면역항체치료제 ‘아이비글로블린 에스엔’과 혈우병 치료제 ‘그린진 에프’의 미국시장진출 여부도 주목된다.

   ▲ 녹십자 창사 45주년 기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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