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제 e스포츠 대회에 참가한 한국의 프로게이머가 경기 도중 로그아웃을 하고 자신의 어머니 계정으로 다시 접속해 경기에 나선 것을 두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이 게이머는 미성년자여서 여성가족부의 게임셧다운제를 적용받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시간으로 밤 12시가 넘어가면 자동으로 접속이 끊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혹자는 이를 두고 국가망신이라고도 꼬집고 있지만, 기자의 관점에서는 나라의 법률제도는 고유한 가치관에 따른 것이다. 외국 기준에서 과도해 보일지 모르지만 한국에서 청소년의 밤 12시 접속을 제한하는 것은 어느 나라나 충분히 생각해 볼 여지는 있는 제도다.
 
정작 나라 망신인 것은, 이 게이머가 어머니 계정으로 다시 접속했다는 것이다. 법이 있어도 이런 편법이 태연히 국제행사에서 통할 수 있다는 것이야 말로 국제 망신이다. 대회가 열린 프랑스에서는 이 선수가 선택의 여지없이 처벌받는 것으로 예상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 때 e스포츠를 취재하고 관련 정책에 의견을 제시했던 기자의 한 사람으로서 최근 몇 년간 벌어진 상황은 매우 안타깝고 일말의 책임을 느끼게 된다.
 
바둑과 체스를 제칠만한 새로운 오락이라고까지 여겨졌던 스타크래프트1(스타1)이 올해 완전히 e스포츠 무대에서 사라졌다. 스타1이 사라지기에 앞서 양대 게임방송국 가운데 하나인 MBC게임이 음악 채널로 전환됐다. 또 프로게이머들이 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공군에이스도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준비를 하고 있다.
 
계열방송국을 게임에서 음악으로 전환한 MBC나 팀을 없애려는 공군을 탓할 상황도 아니다. 스타크래프트2 체제로 완전 전환한 이후 예전의 스타1만한 사회적 영향력이 나타나지 않고 있으니 MBC나 공군이나 이는 불가피한 조치일 수도 있다.
 
또 바둑이나 체스와 달리 스타크래프트는 명백한 지적재산권이 존재하는 게임이다. 제작사인 블리자드가 이제 새로운 제품으로 기업 활동을 하려는 것인데 이걸 뭐라 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누구 하나 탓할 사람을 찾기는 어렵지만 어떻든 결과는 e스포츠에 관련된 시장이 축소되고 자칫하면 이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조만간 일 자리를 잃을지도 모르는 현실이다.
 
다 지난 일이지만, 크게 아쉬운 것은 한국의 e스포츠계가 제작자인 블리자드와 좀더 ‘윈-윈’의 대화를 왜 못했느냐는 것이다.
 
2007년 5월 블리자드가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스타2를 공개할 때부터 게임의 박진감이 떨어지고 스타1만큼 인기를 얻기 어려울 것 같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앞서 스타1이 9년 세월동안 엄청난 인기를 누려서 마침내 공군이 선뜻 공군 팀을 창단해 리그에 참가한지 반년 된 시점이었다.
 
e스포츠는 협회나 방송국 등 모든 시스템이 절대적으로 스타1에 의지하면서 탄생했다. 스타2든 스타3든 스타1을 완전히 대체할 만큼의 명작이 나오기 전에는 스타1의 필요성이 사라지지 않는 곳이다.
 
블리자드의 근시적인 행태 또한 아쉬움이 남는다. 비록 스타1이 이제 아무도 CD를 사는 사람도 없고 회사 영업에 보탬이 안된다 해도 바둑-체스에 맞먹는 ‘블리자드의 제품’으로 존재했다면 차후 이 회사의 신제품 개발 및 판매에도 적잖은 효과를 줬을 것이다.
 
아쉬운 것은, 한국의 e스포츠업계와 블리자드가 첫 박자부터 서로 오해를 양산하는 쪽으로 갔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2007년의 중계권 파동이다. 멀쩡하게 블리자드가 존재하는데 국내의 협회라는 곳이 방송국에다 이제부터 중계권료를 내고 중계하라고 윽박을 지르면서 사태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끝내 경기 중에 협회 소속 게임단들이 선수를 철수시키는 추태까지 빚었다.
 
이 사태 전에는 방송국의 중계가 블리자드에도 좋고 방송국에도 좋은 일이라는 전제로 아무 문제도 없었다. 대회를 주최하는 국내 방송국들도 제작사를 존중해 입장권을 파는 따위는 일체 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만심에 빠진 e스포츠 사람들은 중계권 소동에 ‘블리자드는 아무 관심도 없을 것’이라고 제멋대로 오판을 하고 어설픈 축구나 야구 협회 흉내를 내면서 이익을 도모했다. 그러나 이들의 희망과 달리 얼마 후 블리자드는 국내 e스포츠업계에 말 그대로 지적재산권의 ‘폭풍우’를 몰고 왔다.
 
올해 마지막 스타1 결승을 땀을 흘리며 진행하는 ‘캐리’ 김태형 해설의 모습은 마음이 너무나 쓸쓸해 끝까지 지켜볼 수가 없었다.
 
어른들 도움 하나 없이 아이들만의 힘으로 엄청난 감동구조를 만들어낸 스타1이었다. 관련한 방송국만 두 개가 생겼고 삼성 SK KT 팬택 CJ STX 등 국내 굴지의 재벌들 호응도 이끌어냈다. 광안리 해수욕장에 임시 설치된 경기장에는 10만의 구름관중이 모였다.
 
이런 것들이 모두 과거로 파묻히고 있다는 것이 게이머가 밤12시에 게임을 못하는 것보다 더욱 안타깝다. 어떻게든 스타2 방송에 재미를 붙여보려고 일부러 채널도 고정해 보지만 볼 때 마다 임요환 이윤열이 나오기 어려울 것 같다는 느낌이다. 게임 안하는 사람들도 인지하는 그런 임요환 이윤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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