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기업인의 트레킹 이야기(1)...5년 만에 다시 찾은 '정선 아리랑'의 고향

▲ 박성기 대표

[외부 기고=박성기 도보여행가, 도서출판 깊은 샘 대표] 오년 만이다. 지난 8월 12일, 꼭 일주일 전 여러 경제계 동료들과 함께 정선 덕산기 계곡을 다시 찾았다. 경제인들을 포함, 바쁘게 사는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스트레스를 털어버리고 나를 자연 속으로 끌어들이기에 아주 좋은 코스라는 생각이 들어 덕산기 계곡 트레킹의 추억을 여러 사람들에게 전하기로 한다.

필자는 대학 1학년 때부터 전국의 산과 계곡을 누볐다. 지금도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휴일이면 전국의 산과 들, 마을을 걸으며 역사와 전설이 깃든 이야기가 있는 트레킹을 이어가고 있다. 이에 이번 정선 덕산기 계곡의 트레킹 추억뿐 아니라, 앞으로 이뤄질 트레킹 코스에 대해서도 초이스경제를 통해 종종 소식을 전하려 한다<필자 주>

4년 동안 닫힌 문이 열리고 다시 길이 났다. 은빛으로 한없이 조잘대던 계곡의 물소리가 자꾸만 귓가를 간지럽힌다. 빠진 게 없는지 준비물을 챙기며 잠을 청하지만 계속 선잠이다.

며칠째 내내 찌푸리던 하늘은 마치 가을하늘처럼 깨질 듯 투명하고 청명하다.

서울서 세 시간을 넘게 부지런히 달린 버스는 민둥산 역을 만나 좌로 몸을 틀었다. 삼십 분을 더 달려 몰운대에 도착했다.

 

▲ 사진=박성기 대표 제공

수백 척 우뚝한 뼝대(절벽)는 거대한 모습으로 구름을 잡아챈다 해서 몰운대(沒雲臺)다. 몰운대 바위틈을 밀치며 수백 년 소나무들이 다투듯 뿌리를 내리고 서있다. 기묘하고 아름다운 풍경이다.

수백 명이 앉을 수 있을 만큼 넓게 자리를 편 넓적 바위가 우리를 맞이했다. 아래로 절벽이 아슬해서 앞으로 고개만 내밀며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아스라한 절벽 위 거세게 휘도는 어천(漁川)을 수직 낙하, 한참이고 내려 보면 몸을 빨아들일 듯 유혹한다.

시인은 “몰운대는 꽃가루 하나가 강물 위에 떨어지는 소리가 엿보이는 그런 고요한 절벽”이라고 노래한다.

가지에 걸린 나뭇잎은 제 한 몸 몰운대 절벽 아래 어천(漁川)으로 표표하게 낙하한다.

나뭇잎을 받아 문 어천은 화암면을 지나 정선 소금강 계곡을 향해 줄달음질 쳤다.

버스는 층층이 쌓인 소금강 협곡의 뼝대에 취해 잠시 머뭇거리다 우측으로 몸을 틀어 어천을 건넜다.

북동리로 들어가는 길이다.

버스는 차 한 대 겨우 지날 만큼의 비탈길을 꾸불꾸불 돌고 돌아서 힘들게 700미터가 넘는 문치재를 넘었다. 사방 천 미터가 넘는 산에 갇혀있는 북동리로 들어가는 문(門)이라 해서 문치재(門峙岾)라 했다던가. 북동리는 너무나 깊어서 6.25때 전쟁도 모르고 지나갔다고 하는 오지중의 오지이다. 오년 전에는 찾는 이가 많지 않고 적막했는데 벌써 버스가 세 대나 되돌아 나온다. 벌써 많이 알려져서 분주해졌다.

북동리를 들어서자 30여 호의 마을이 있고 배추밭과 고추밭이 눈에 띈다. 북동리가 예전 잘나가는 사금광 지대였다는 팻말이 보여 그나마 금광 때문에 문치재로 길이 났으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북동삼거리에 도착했다. 정선군청에서 나온 안내인이 친절하게 일행을 반긴다. 마침 이삼일 동안 비가 많이 내려서 건천인 덕산기가 최고의 상태로 되었다고 반가운 소식을 알려준다.

북동삼거리에서 다리를 건너 좌측 덕산기 계곡으로 길을 잡았다.

차가운 물은 등허리를 따라올라 머리끝까지 냉기를 뻗쳐 올렸다. 몸을 한번 부르르 떨고는 툴툴 털고 물속을 걸었다. 물길과 사람 길이 교차하며 서로 왔다 갔다 사이좋게 지나간다.

아무도 살지 않아 문짝이 떨어진 녹슨 양철집이 눈길을 붙잡는다.

왁자하니 아이들 떠드는 소리와 지붕위로 밥 짓는 연기가 몽글거리며 피어오른다. 삶의 무게를 짊어진 농부는 탄 서린 소리로 아리랑을 넘긴다.

 

▲ 사진=박성기 대표 제공

잠시의 상념을 뒤로 하고 계속 물길을 헤쳐 걷는다. 울창한 낙엽송을 따라 걷기도하고, 바위 너럭지대를 걷기도 하였다. 옥빛 자갈 위 얼음처럼 투명하고 맑은 물이 자그락 우르릉 소리로 속세에서 묻어온 속진을 깨끗하게 씻어준다.

병풍처럼 둘러 싸여 눈앞을 가로막는 거대한 뼝대는 돌아들면 다시 계속 겹겹이 길을 내준다. 배가 출출하다. 점심때가 다되어 출발했으니 그럴만하다. 자리를 잡고 앉아 휴식을 취하며 싸온 음식으로 요기를 했다. 후발로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지나쳐간다.

“어서 오세요. 안녕히 가세요. 좋은 길 오셨어요”

낯모르는 사람들과 인사와 덕담을 나누며 트레킹의 즐거움을 만끽한다.

정선 아리랑의 구성진 가락처럼 굽이굽이 휘고 도는 계곡을 따라 얼마간 걸으니 정선 애인 게스트하우스를 대신해서 같은 자리에 정선 토박이인 소설가 강기희 작가의 숲속책방이 있다.  미리 강냉이를 맞춰 놓아서 휴식 겸 강냉이를 먹으며 한참을 놀았다. 많은 사람들의 쉼터로 곳곳에 앉아서 식사도 하고 담소도 나누는 모습이 정겹다. 예전엔 이곳이 덕산기 마을로 화전을 일구며 살았는데 지금은 다 떠나고 계곡만 남아있다.

덕산기란 이름의 유래는 옛날에 덕산(德山)이라는 도사가 이곳에 터(基)를 잡았다고 해서 덕산기가 되었다는 전설과 원래 큰 산이 많은 터라 해서 덕산 터라 부르던 것이 바뀌어 덕산기(德山基)가 됐다는 이야기 있다.

물에 뛰어 들었다. 목까지 차는 계곡물에 몸을 담그자 온몸이 짜릿하다. 주변의 일행은 다투어 물에 뛰어들었다. 여름 계곡 트레킹의 묘미는 물속을 거닐고 이렇게 물놀이를 하는 것이다. 물장구도 치고 물을 뿌려대며 맑은 하늘과 층층이 펼쳐진 뼝대를 누리며 세상의 시간을 잊어버렸다.

물길을 따라 계속 걸으니 사방에 염원을 담은 돌탑들이다. 탑돌이도 하고 기원도 해보다가 일행들은 나서서 돌탑을 쌓기 시작했다. 마음을 담아 한 층 한 층 공덕을 쌓아 올렸다.

모두 무사무탈하게 해주소서. 그리고 우리 경제도 잘 되게 해 주소서.

비와야 폭포다. 뼝대의 꼭대기에서 아래로 수직의 물길이 보인다. 물은 보이지 않고 수직으로 길만 보였다. 비가 많이 오면 폭포가 되어 떨어진다 해서 비와야 폭포다. 쏟아 내리는 거대한 폭포가 장관일 테지만 지금이 비가 내리지 않아 흔적만 있다. 비가 와야 폭포가 된다는 이름이 재미있다.

덕산3교, 덕산2교, 덕산1교는 도로를 따라 걸었다. 계곡엔 많은 풀들이 자라있어 들어갈 수가 없었다. 오년 전 가장 최고의 경치를 뽐내던 곳인데 풀이 너무 우거져 아쉽기만 하다.

덕산1교는 덕산기 계곡의 종착지다. 여기서 어천과 합류한다. 우리는 어천을 따라 덕산기의 끝을 보기로 했다. 덕산기 계곡의 물과 몰운대를 지나 정선 소금강계곡을 따라 흐르던 어천이 만나 더 큰 어천이 된다.

어천을 우로 돌아 덕산기의 마지막 절벽을 따라 걸으며 종착지 여탄 경로당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어천은 정선 읍내로 끼고 돌아나가는 조양강(여량의 아우라지에서 흘러내려오는 강)과 만나 이내 동강이 되어 어라연을 향해 흘러간다.

내 귓가에는 물길 열두 구비를 돌며 아련히 들려오는 정선아리랑 한 구절이 맴돌았다.

“강물은 돌고 돌아서 바다로 나가는데

이내 몸은 돌고 돌아서 갈 곳이 없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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