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버니 마마, 소인에게 땅을 물어 주시옵소서.”

 
“오호! 공주가 땅을 해 뭣 하는고. 그래 그럼 어디를 얼마만큼 준다?”
 
한바탕 껄껄 웃은 왕의 눈에 큰 솔개 한 마리가 북쪽에서 나타나 동쪽으로 둥근 원을 그렸다.
 
“저어기, 저 솔개가 원을 그린 아래는 다 네 땅이니라.”
 
사극에 가장 많이 등장한 것으로 추측되는 조선 숙종이 친동생 명안공주와 나눈 대화다. 숙종은 저 유명한 장희빈 드라마의 바로 그 임금이다.
 
숙종은 첫 번째 부인 인경왕후 김씨를 일찍 사별하고 인현왕후 민씨와 재혼했다. 하지만 희빈 장씨와의 깊은 사랑으로 끝내 인현왕후를 사저로 내쳤다. 인현왕후는 5년 후 복위됐지만 폐위기간 스스로에게 혹독한 생활을 하다 건강을 헤쳐 끝내 서른 다섯 춘추에 승하했다. 잠시 왕후를 했던 희빈 장씨는 숙종이 직접 사약을 내려 처형했다.
 
한마디로 최악의 남편인 숙종이다. 하지만 이렇게 잔인한 남자가 동복동생 명안공주만큼은 무척 아꼈던 모양이다. 위 대화는 해주 오씨 집안으로 시집간 공주가 모처럼 궁에 놀러와 오누이가 함께 궁중 다락에 올라가 시내를 보면서 나눈 것이다.
 
숙종은 청나라에서 고급비단이 들어오면 마누라들보다 명안공주에게 먼저 줬을 정도라고 한다. 곱게 자라 세상 물정 모를 것 같은 여동생이 이제 땅 좋아하는 법도 아는 것이 오라버니 임금 눈에 무척 희한했던 것 같기도 하다.
 
솔개가 원을 그린 아래 지역이 오늘날의 성북동에서부터 시작해 월곡동, 청량리 일대다. 조선말까지 월곡동 일대에 오씨 집안의 땅이 많았던 사연은 이날의 오누이 대화에서 비롯됐다.
 
서울시의 26일 발표에 따르면 성북동 성북2구역에 한옥마을이, 하월곡동 신월곡1구역에 복합주거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아직까지 남아있었던 성매매 집창촌, 소위 ‘미아리 텍사스’가 이 계획에 포함돼 역사 속에서 사라지게 됐다.
 
320 여 년 전 솔개가 원을 그리고 역사에서 사라져 간 곳이기도 하다. 오라버니 임금의 지극한 우애에도 불구하고 명안공주는 스물 세 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이 무렵 숙종의 희빈 장씨에 대한 사랑이 갈수록 깊어져 다음 해, 희빈 장씨는 왕자(경종)를 낳았다.
 
공주가 떠난 그 땅에 무수한 사연이 교차해 오늘에 이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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