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상에게 필요한 카리스마와 행정능력의 균형

한나라의 행정 기틀을 다진 초대승상 소하가 죽자 조삼이 뒤를 이었다. 이때는 이미 개국 황제인 한 고조가 죽고 아들인 2대 효혜황제의 치세였다.

조삼 또한 한나라 개국에 큰 공을 세운 선대의 공신이었다. 비록 군신지간이라도 젊은 황제가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국가의 원훈이다.
 
문제는 새 승상 조삼이 전혀 일을 안하고 술만 마신다는 거였다. 그의 관저 주변에 젊은 선비들이 술판을 자주 벌여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관저의 집사가 승상의 침소를 그 근처로 옮겨 놓았다. 저절로 승상의 눈에 띄어 혼찌검이 나게 하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조삼은 젊은이들이 술판을 벌인 것을 보자 자신도 한자리 차지하고 앉아 마음껏 마시고 떠들며 어울렸다. 그리고는 역시 정사를 돌보지 않았다.
 
▲ 드라마 초한지의 조삼. 승상인 소하와 얘기 나누는 장면.

웬만한 신하면 불러다가 호통을 치던가 벌을 내리겠는데, 원로대신이다보니 황제는 난처하기만 했다. 궁리 끝에 조삼의 아들을 불러 “내가 했단 얘기는 하지말고 경의 아비에게 ‘나라일도 보살펴야하지 않겠습니까’라고 청해보라”고 부탁했다.
 
아들의 권유를 받은 조삼은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고 화를 벌컥 내며 무려 200대나 종아리를 때렸다. 황제는 그만 무색해져서 조삼을 불러 솔직하게 얘기했다.
 
“사실 그건 내가 시킨 일이었소. 왜 그렇게 아들을 심하게 혼냈소?”
 
조삼은 사죄의 표현으로 관을 벗으며 아뢰었다.
 
“폐하께서 보시기에 폐하와 고조 가운데 누가 더 성명하고 영무하십니까?” 사실 이런 질문은 선대의 공신 정도나 돼야 할 수 있는 것이다.
 
혜제가 답했다. “짐이 어찌 감히 선제를 넘보리오.”
 
“그럼 폐하께서 보시기에 저와 소하 중에서는 누가 더 능력이 뛰어납니까?”
 
“그대가 못 미치는 것 같소” 젊은 황제는 여기서도 늙은 공신에게 약간 조심스런 모습이다.
 
조삼이 ‘종합 설명’을 했다.
 
“참으로 영명하십니다. 고조와 소하는 천하를 평정하고 법령도 밝게 정하셨습니다. 이에 못미치는 폐하와 저는 직분을 지키면서 옛 법도를 따르기만 하고 잃지 않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혜제는 듣고보니 딱히 트집을 잡기가 어려워 “좋소. 편한대로 하시오”라고 동의했다.
 
조삼이 승상으로 재직한 3년 동안, 행정체계는 큰 탈없이 돌아갔다.
 
무려 2200여년 전 사마천 기록이므로, 조삼의 고사가 토씨 그대로 전해진다고 확정지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이렇게 일안하고 놀고 먹는 ‘총리’가 가능했던 전후 관계는 추론해 볼 수 있다.
 
조삼은 전임자 소하와 같이 진나라 시절 패현의 하급관리였다. 패현은 바로 한고조 유방의 고향으로 고을 관리인 두 사람은 동네건달 유방보다는 윗사람이었다. 소하는 관청의 문관이었고 조삼은 죄수들을 지키는 옥리였다. 이같은 문무의 차이가 나중에 천하통일 과업에서 더욱 크게 벌어져 소하는 승상이 됐고 조삼은 대장군 한신의 휘하에서 적들과 접전을 벌이는 장수가 됐다.
 
세월이 가면서 소하와 조삼은 사이가 벌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소하는 자신의 죽음을 맞아 후임자로 조삼을 추천하고 세상을 떠났다. 조삼은 이 때 제후국의 관리로 나가있었는데 소하의 사망 소식을 듣고 스스로 중앙 정부의 승상이 될 것을 짐작해 이미 짐을 꾸려놓았다고 한다.
 
일하는 총리 소하에 대해서는 앞선 만필에서 소개한 적이 있다. (☞ 횡령한 덕택에 살아남은 국무총리)
 
그렇다면 행정 식견도 없고 일도 안하는 총리 조삼이 건재했던 이유는 뭘까. 신참황제가 갖지 못한 개국 신화의 카리스마가 있었던 것이다. 아무 일을 안하고 그냥 있는 것 만으로도 조정 각 부처가 돌아가게 만드는 권위가 조삼의 재상 3년을 가동시킨 원동력이다.
 
이런 인물의 선택은 최고 통치자가 그때그때 시국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느냐는 혜안과도 관계가 있다.
 
그렇다고 카리스마 있는 재상만이 항상 성공을 보장하는 건 아니다.
 
혜제와 조삼의 시대로부터 세월이 조금 흐른 3대 효문황제의 때가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제 막 여씨들의 반란을 평정한 효문제는 실질적인 한나라의 두 번째 황제여서 사상 최초로 태종이라는 묘호를 갖게 되는 임금이다.
 
여씨들의 반란을 토벌하는 과정에서 개국원로 주발이 또다시 큰 공을 세워 효문제는 그를 우승상으로 임명했다. 행정 능력이 뛰어난 진평은 다음 자리인 좌승상이 됐다.
 
어느날 황제가 우승상 주발에게 물었다.
 
“온 나라에 일년동안 옥사를 판결하는 건수가 얼마입니까.”
“재정상 수입과 지출은 얼마입니까.”
 
주발은 두가지 질문에 모두 대답을 못하고 쩔쩔맸다. 평생을 야전 지휘관으로 살아온 그의 경력과는 거리가 먼 업무들이었다.
 
이번에는 황제가 좌승상 진평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진평은 “폐하께서 옥사 판결에 대해 궁금하시면 정위에게 물으시고 재정에 대해 궁금하시면 치속내사에게 물으소서”라고 답했다.
 
황제가 재차 물었다. “그럼 승상들이 하는 일은 무엇이오?”
 
“위로 천자를 보좌해 음양을 다스려 사시를 순조롭게 하고 아래로 만물이 제때 성장하도록 어루만지며, 밖으로는 사방 오랑캐와 제후들을 진압하고, 안으로는 백성들을 친밀히 복종케하여 벼슬아치들이 제대로 그 직책을 이행하게 하는 것입니다”라는 청산유수의 답변이 진평으로부터 흘러나왔다.
 
황제는 진평의 대답에 크게 기뻐했지만, 주발은 이제 카리스마만 있고 행정능력이 없는 자신이 물러나야 할 때임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진평이 카리스마가 전혀 없는 승상은 아니었다. 그 또한 초한의 전쟁기간부터 고조를 따라다니며 무수한 책략으로 큰 공을 세운 공신이다. 병권을 직접 담당한 적이 없었다는 점에서 영향력이 제한됐을 뿐이다.
 
국무총리의 카리스마와 행정능력과 관련해서 흥미로운 인물이 참여정부 시절의 이해찬 국무총리다. 김대중 정부 시절 교육부장관으로서는 별로 좋은 평가를 못받은 사람이고 또 총리 재직중에는 야당과의 정쟁으로 거듭 논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총리 시절 국정 파악과 관련해서는 교육부 장관 시절과 상당히 다른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그 가운데 흥미로운 부분이 호남고속철이다. 호남 의원 대부분이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 소속이었지만 이해찬 총리 재임시절에는 말도 꺼내기 어려웠다. 국회 본회의에서라도 여당 의원이 호남고속철을 제안하면 이해찬 총리는 바로 답변석에 올라 “타당성이 없고 국책사업을 그런 식으로 해서는 안된다”고 호통을 쳤다. 질문을 던진 의원이 무안할 정도였다. 관료 출신의 총리였다면 보여주기 힘든 면모였을 것이다.
 
국무총리가 행정만 아는 사람이 오면 국정의 모든 부하가 그대로 대통령으로 집중하게 된다. 총리가 정치적 판단을 못 내리니 대통령이 모든 결정을 다 내려야 하는 만기친람을 지속해야 된다. 비서실의 비정상적 확대라는 문제도 파생된다.

반면 정치만 알고 행정을 모르는 사람이 오면 아마 초등학생들 조차 내편 네편으로 정쟁만 일삼는 나날이 지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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