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수감된 지 3개월이 지나고 있다. 그에 관한 재판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김승연 회장 측은 지난 13일 법원에 보석 신청을 냈다. 정치권에서 “경제민주화가 ‘도루 묵’이 되냐”는 시비가 일고 있는 가운데 재벌 총수의 보석 신청을 내는 배포는 예사롭지 않은 것이다.
 
보석 신청 소식이 들리더니 간간이 “김승연 회장이 없어서 한화 경영이 어렵다”는 식의 기사도 눈에 띄고 있다. 이런 기사는 독자들한테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 의문스럽지만 법원의 결정은 신문 독자나 민심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판사 한사람에게 달려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김 회장이나 담당 판사가 아닌 전혀 엉뚱한 사람이 후폭풍을 맞기도 한다. 이를테면 정치권의 선거에 출마한 후보라든지 개혁에 유독 “신중하자”는 목소리를 많이 냈던 사람 등이다.
 
이런 가운데 19일에도 김승연 회장에 대한 공판이 열렸다. 이날 열린 서울 고등법원 형사7부 재판에서 담당판사는 “앞으로 재판을 대법정이 아닌 중법정에서 하겠다”고 밝혔다. 6명이나 되는 피고인이 다 나올 필요 없이 사건 별로 부르겠다는 것이다. 중법정이니 변호인도 우루루 다 나오지 말고 한화그룹 사람들도 숫자를 좀 줄여서 나오라고 당부했다.
 
여기까지는 납득이 가는 얘기지만 그 다음 판사의 당부가 문제였다.
 
“기자들도 ‘풀 기사’로 해서 숫자를 맞춰라”고 판사는 당부했다. 법조 출입하는 기존언론가운데서 당번을 정해 몇 사람만 취재를 하라는 것이다. 철저한 보안이 요구되는 청와대에서 하는 취재 방식이다. 이유는 보안이 아니라 재판정이 좁아지기 때문이라니 이렇게 해서 나오는 기사에 과연 뉴스 소비자들이 만족할 수 있을까.
 
요즘 독자들은 그동안의 ‘언론 학습 효과’에 따라 같은 사건도 다양한 언론의 시각에서 보기를 원한다. 신문 하나만 구독해 보는 시절엔, 내가 보는 신문 기자만 취재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인터넷만 통하면 전혀 다른 논조의 기사를 비교해가며 읽는 세상이다.
 
특히 재벌 총수의 위법 문제에 대해서 독자들은 기존 관행에서 벗어난 언론 접근을 절실히 원하고 있다. “김 회장이 없어서 경영이 어렵다”는 기자도 재판을 보고 달리 생각하는 기자도 재판을 보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김승연 회장의 사건은 현재 경제민주화의 최후 보루처럼 인식되고 있다. 국민의 눈과 귀가 쏠려있는 것을 생각해서 담당재판부가 법정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판결이야 법리에 따라 판사가 내려야겠지만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는 것에 국민의 접근이 부당하게, 또는 비합리적으로 차단되는 일이 있으면 곤란한 일이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이날 재판장을 가득 메운 한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김승연 회장의 그룹내 카리스마는 일체의 흔들림이 없음을 과시했다.
 
김 회장을 처음으로 직접 본 기자로서는 비록 연푸른 죄수복을 입고 있었지만 과연 법정 내 모든 사람을 압도하는 풍채를 실감했다. 김 회장을 자주 본 사람들 눈에는 어떨지 모르겠다.
 
한쪽 발에 깁스를 한 그는 목발도 갖고 있었지만 때로는 목발을 내버려두고 직접 걷기도 했다. 같이 수감된 홍동옥 여천 NCC 사장과 김관수 한화호텔앤드리조트 대표가 부축을 했지만 큰 도움은 안되는 모습이었다.
 
이날 출석한 증인 한 사람이 “윗 분이 누구냐”는 변호인 질문에 “김연배 재무팀장”이라고 답변할 때는 귀를 만지다가 방청석을 응시하기도 했다. 방청석에는 김연배 한화증권 부회장이 나와 있었다.
 
한화그룹에 대한 여신을 담당했던 한일은행 전 임원에 대해 변호인이 장황하게 1997년 당시 경제상황을 설명하는 동안 김승연 회장은 줄곧 눈을 감고 있다가 자세가 불편하면 의자를 당기기도 했다.
 
오후 5시반경 재판이 마무리되고 판사가 다음 일정을 알리자 김승연 회장은 흰색 목도리를 만지작거리면서 이날의 갈 곳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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