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 재판과 ‘이맹희-이건희’ 재판 현장에 늘 나타나는 몇몇 법조인들이 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변호인단 중 일부가 동일한 법무법인 소속이다. 실제로 변호인으로 선임되지는 않았어도 소속 법무법인의 선배 변호사를 따라 법원에 나온 사람들을 두 곳 재판에서 모두 보게 된다.

 
이맹희-이건희 형제의 법정 대결을 지켜보다 보면 이맹희 씨 측 변호인이 마치 검사처럼 보이는 착시현상도 발생한다. 피고인 이건희 회장측 변호인단 관계자가 다른 재판에서는 피의자 변호인으로 나타나는 것도 작은 원인일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이유는 이른바 대중의 ‘법 감정’이다. ‘법 감정’과 관계된 문제에서 삼성은 언제나 불리한 위치다. 누구든 삼성에 맞서면 약자로 보이게 되고, 대중은 약자에게 정서적 동질감을 느낀다. 이맹희 씨 변호인이 검사처럼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재판은 어디까지나 민사재판이다. 형사인 김승연 재판과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김승연 회장에 대해서는 법을 어긴 것을 심판하는 것이고, 또 그 법은 경제 정의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다수 대중의 이해를 지키기 위해 김승연 회장을 심판하는 것이다.
 
이와 달리 이맹희-이건희 재판은 당사자 간의 합리적인 이해 배분을 위해 진행되는 것이다. 어느 쪽이 이겼다고 해서 다수 대중의 이해에 더 크게 기여한 것으로 결론 내릴 수는 없다. 물론, 삼성이라면 관행적으로 용인되던 것들이 타당하냐를 따지는 면이 아주 없지는 않다.
 
재판장들의 스타일에서도 두 재판의 차이가 엿보인다. 김승연 회장 재판의 윤성원 부장판사는 출석한 증인들에게 까다로운 법정 절차를 소탈한 용어로 쉽게 풀어 설명해주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드라마에서 흔히 나오는 “증인선서 하세요”라는 말도 그는 “거짓말 않겠다는 선서 하세요”라고 풀어 얘기하는 식이다. 목소리도 시원시원하다.
 
이에 반해 삼성가 재판의 서창원 부장판사는 차분한 목소리로 재판을 이끌어간다. 그가 상대하는 사람이 모두 초일류 변호인이기 때문에 쉬운 설명이 필요 없는 재판이기도 하다. 그러나 양쪽 변호인단이 제출한 막대한 자료 가운데서 연결이 잘 안되는 부분은 모두 꼼꼼하게 지적해 한동안 난해한 토론이 오고간다. 이 재판의 기록은 이미 8000페이지를 넘어섰다.
 
민사인 삼성가 재판은 ‘누가 정의의 편이냐’를 따지는 게 아니라 ‘현행법은 누구의 편이냐’로 결론이 나게 돼 있다. 그 결론이 양자 모두 크게 불만족스러울 수도 있다. 그래서 법의 판단으로 가기 전에 이해 당사자간 합의로 결론이 나는 경우도 많다. 이 재판을 지켜보는 상당수 사람들이 바라는 것도 바로 이런 합의다.
 
그렇다고 “형제간 우애를 생각해서”라든지 “호암의 유지를 잊지 말고”하는 따위 한가한 소리로 이런 엄청난 분쟁을 마무리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어느 결론이 양측의 이해를 가장 맞춰주느냐가 합의의 밑바탕이 될 것이다.
 
삼성전자가 갑자기 ‘CJ전자’로 바뀌는 경우를 CJ그룹 쪽에서 바라고 있지도 않을 것이다. 삼성생명을 ‘CJ생명’으로 바꿔서 작은 아버지의 금산분리 시비를 대신 짊어질 생각도 없을 것이다.
 
양쪽 다 국내외 업계에서 인정받고 있는 초일류 기업들인 만큼 냉정한 판단으로 타당한 결론을 낼 것으로 예상한다.
 
이병철 회장의 상속 재산에 대한 분쟁 자체를 소모적이고 불필요한 것으로 매도하는 것도 적절치 못하다. 예전에 한국 사회가 소홀히 여겼던 가치 기준을 분명하게 잡아 앞으로의 분명한 도덕적 법적 기준을 세우는 훌륭한 계기가 될 수 있는 재판이다.
 
이런 큰 사안을 통해 한국의 법조계가 축적하는 노하우도 적지 않을 것이다. 큰 경험을 통해 쌓은 실력을 바탕으로 론스타 시비 같은 해외에서의 도발도 거뜬히 물리치는 실력을 갖게 되면 국가적으로는 그게 전화위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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