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진문공을 죽이려한 발제, 두 번 그를 살려내

[초이스경제 장경순의 만필세상] 다시 진문공 이야기다.

춘추 5패 가운데 그는 인간적 몰입을 유발하는 이야기들이 너무나 많다. 다섯 명의 패자 모두 은수저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공자들이지만 진문공 중이는 19년 망명 생활로 웬만한 영세민 노숙자 생활을 다 거쳤다. 유독 진문공 이야기를 많이 하는 이유다.

고난이 깊었던 만큼 사물을 대하는 태도가 왕실 재벌집 자제들과는 달라도 너무나 다르다.
 

▲ 1996년 중국드라마 '동주열국 춘추편'의 진문공 중이. /사진=동주열국 춘추편 유투브 화면캡쳐.

 

그의 망명 생활은 세자이자 이복형인 신생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아버지 헌공은 한 때 진나라를 강국으로 키운 명군이다. 그러나 애첩 여희의 농간에 빠져 말년에는 오로지 여희 소생 해제를 세자로 갈아치우는 데만 혈안이 됐다. 마침내 제 아들 신생을 헤치고 다른 아들인 중이와 이오마저 죽여서 후환을 없애기로 했다.

이 때 중이는 포라는 지역에 나가 있었다. 헌공은 아들인 중이를 죽이라는 명을 시인 발제에게 내렸다.

그러나 발제보다 한 걸음 앞서 포에 도착한 사람들이 있었다. 진나라 조정에서 명성이 높은 호모, 호언 형제였다. 도성에서 벌어진 끔찍한 정변을 듣고 중이가 혼비백산했을 때 발제의 살인부대가 포성에 당도했다.

호언 형제의 도움으로 중이는 쫓아오는 발제의 칼날을 겨우 벗어났다. 두 형제가 중이를 힘껏 담장 위로 끌어 올린 덕택에 찰나의 위기를 모면했다. 발제는 끊어진 중이의 소맷자락만 들고 헌공에게 돌아갔다. 이것이 중이와 발제의 첫 번째 악연이다.

헌공의 뜻대로 여희 소생 해제는 헌공의 후계 임금이 됐다. 그러나 기반이 약하고 어린 해제는 그 자리를 오래 지키지 못했다. 중이와 같은 시기에 부군의 위협으로부터 망명했던 이오가 다시 정변을 일으켜 해제를 죽이고 그 자리를 차지했다.

중이와 ‘동병상련’으로 아버지와 고국으로부터 도망쳤던 이오였지만, 중이에게 하는 행동은 아버지 헌공과 하등 다를 바 없었다. 명망 높은 중이를 후환으로 보고 그를 죽이고자 했다. 이오 또한 중이 살해의 명령을 앞서 실패했던 인물 발제에게 내렸다.

발제는 이번에는 먼저와 달리 극소수 무사를 거느리고 중이가 망명중인 책나라로 비밀리에 잠입해 그를 죽이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진나라 조정에는 여전히 중이를 따르는 인물이 많았다. 발제가 많은 돈을 들여 무사를 구한다는 소문을 바탕으로 중이 암살 계획을 알게 된 인물들이 망명중인 중이에게 급하게 이 사실을 알렸다.

상황이 너무나 급해 중이를 따르는 명사들은 오직 수레 한 대에만 중이를 태우고 자신들은 모두 걸어서 책나라를 떠났다. 이들의 재물을 관리하던 두수가 뒤따르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중이와 발제의 두 번째 악연도 발제의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이번에는 발제가 중이에게 심각한 타격을 안긴 결과가 됐다. 중이의 재산관리인 두수가 모든 재물을 들고 도망쳤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중이에게는 먹을 것 조차 없어 개자추의 넓적다리 살로 겨우 연명하는 고난이 시작됐다.

두 차례 실패를 맛본 암살자 발제에게 세 번째 기회가 찾아왔다. 하지만 이 때는 상황이 매우 크게 바뀐 뒤였다. 마침내 중이가 19년 망명 생활을 청산하고 돌아와 진나라 임금이 돼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발제가 숨어서 도망다니는 처지가 됐다.

진나라 조정에는 문공 중이에게 미운 털이 박혔을까 두려워하는 인물이 있었다. 여생과 극예였다. 두 사람은 몰래 발제를 찾아내서 기습적인 궁궐 안팎의 호응으로 진문공을 죽이기로 모의했다. 발제에게 세 번째 중이를 죽일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그러나 세 번째 악연을 벌일 시점에 발제에게 급격한 심경의 변화가 일어났다. 앞서 두 차례나 자신이 실패한 건 하늘이 중이를 돕기 때문이 아닐까. 비록 그를 죽인다고 해서 그 다음은 어찌될 것인가.

발제는 마침내 발길을 진문공 중이의 측근인 호언의 집으로 돌렸다. 호언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진문공은 과연 노발대발하며 “죽이기 전에 사라지라”고 호통을 쳤다.

이미 죽기를 각오하고 이 자리에 이른 발제가 굴하지 않고 반박했다. “저에게 주공을 죽이라고 명한 헌공은 주공의 아버지시며, 혜공(이오)은 주공의 아우입니다. 아비가 자식을 원수로 삼고 동생이 그 형을 원수로 생각한 것은 꾸짖지 않으시고 이 보잘 것 없는 발제만을 책망하십니까?”

이어 발제는 “그 당시에 소신 발제는 헌공 혜공만이 임금인 줄 알았지 어찌 또 임금이 있으리라고 생각 했겠습니까”라고 따졌다.

진문공이 크게 와닿는 바가 있어서 주위를 물리치고 마침내 발제로부터 궁중 변란의 역모를 알아내게 됐다. 여생과 극예를 처단함으로써 문공과 발제의 세 번째 악연은 오히려 첫 번째 인연으로 돌변했다.

두 사람의 사연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마침내 국력을 갖춘 진문공은 첫 번째 원정 길에 나섰다. 장차 남방의 강국 초나라와 결전을 벌여야 할 그는 초의 우방인 조나라부터 복종시켜야 했다.

진군이 출병한다는 소식에 조나라는 겁을 집어먹고 성문을 연채 항복문서를 문공에게 바쳤다. 진나라 총사령관 선진은 조나라의 진의를 의심했다. “한번 싸우지도 않은 적이 순순히 항복할 리 없습니다. 참인지 거짓인지 시험해 봐야 합니다.”

조나라가 본심을 드러내게 하려면 목숨을 걸고 진문공을 대신해 임금 행세하며 입성할 사람이 필요했다. 이 때 나선 사람이 바로 발제였다.

한 차례 임금을 구하는 큰 공을 세웠지만 그는 앞서 두 차례나 임금을 죽이려고 한 사람이다. 참으로 지우기 힘든 기억을 가진 진문공과 발제의 사이였다. 발제가 가짜 임금 행세를 자원하고 나선 것은 이런 처지에서다.

임금의 관과 옷을 입은 발제가 임금의 수레에 올라타고 500여명의 병사를 거느리고 활짝 열린 조나라 성문으로 들어갔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조나라는 진문공 중이가 가장 궁핍한 망명세월을 보낸 곳으로 그의 얼굴을 알아볼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날이 어두워 진나라 임금이 가짜임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가짜 임금 발제의 행렬이 절반 쯤 입성했을 때 갑자기 성문이 닫혀 버렸다. 성 틈에서 화살이 일제히 쏟아져 나왔다. 모두 수레 위의 발제를 겨냥한 것이었다. 발제는 물론 그를 호종하던 300여명의 병사가 즉사했다.

조나라 임금과 조정은 기묘한 계책으로 강대국 진나라 임금을 죽였다고 기뻐했지만 다음날 아침 진상을 알게 됐다.
 

▲ 진문공이 발제의 공격에서 간신히 벗어나는 모습. /사진=1964년 김구용 열국지 삽화.

 

발제에게 고마운 만큼 혐오감도 깊었던 진문공은 이제 그에 대한 모든 감정이 고마움으로 바뀌었다. 또한 자기를 죽이려한 조나라 임금에 대한 분노와 발제를 위한 복수심이 솟구쳤다.

조나라 선조들이 묻힌 무덤에 도굴 명령을 내렸다. 이 소식에 굳게 닫혔던 조나라 성문이 열렸다. 이런 장면은 예악과 제사가 극도로 중시되던 춘추시대임을 참고하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진문공은 조나라 임금을 즉시 구금했다. 초나라를 물리치고 주나라 천자를 모신 자리에서 주 천자가 진문공에게 선처를 당부할 때까지 조나라 임금은 비참한 포로생활을 하게 됐다.

발제는 평생을 두고두고 임금을 죽이려했다는 경계심을 얻으면서 사느니, 자손들 만큼은 드높은 공신 자제로 사는 길을 택한 것이다.

진문공 중이가 믿었던 사람만 계속 믿었다면 그가 즉위 초, 그리고 조나라 공격 때의 위기를 벗어나는 길은 훨씬 더 험난했을 것이다.

진문공은 또 한 번 ‘수첩’을 뒤집는 인사를 펼친다. 망명 때 재물을 들고 달아났던 두수까지 찾아서 기용한 것이다. 몇 차례 정변으로 보복을 두려워하던 진나라 관리들은 더 이상 동요하지 않고 맡은 일에 몰두할 수 있게 됐다.

나랏일에 대해서는 ‘막중국사’라는 말을 한다. 수 많은 국민의 안위와 이해가 걸린 일이 국정이다. 오로지 냉정하게 국익을 도모하기를 그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니 국정관리자 개인의 호불호 또한 따질 여유가 없다는 이치를 진문공과 발제의 고사가 보여주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믿기 싫은 인간이지만, 국정에 보탬이 된다면 이 또한 국민을 위해 활용할 길을 찾는 것이 지도자의 덕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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