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가다 사극에서 특정한 고어가 유독 많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국본’이란 단어가 한 예다. 한 때 어떤 드라마는 세자를 굳이 국본이라고 지칭하는 경우가 있었다.
 
세자가 자신을 어려워하는 서민에게 “내가 국본이라서 그러는 것이냐”고 하는 식이었다. 부왕이 두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있는데 과연 어느 세자가 저렇게 입을 놀릴 수 있을까.
 
한국과 중국의 왕조시대 글들을 읽어보면 국본이란 단어가 나오기는 한다. 그러나 이 단어가 태자 또는 세자 등 저군(儲君)의 동의어라고 보기는 어렵다.
 
“세자를 세우심은 국본을 정하는 것으로”라고 하면서 인용되는 정도다. 과문한 탓인지 아직 그 어디서도 “동궁전에 계시는 국본께서”라고 지칭하는 원전의 글을 본 적이 없다.
 
정리하자면, 세자를 세우는 건저(建儲)행위가 대통의 흐름, 즉 국본을 밝힌다는 의미로 쓰였다는 것이다. 국본이란 특정인이 아닌 임금의 행위를 지칭하는 것이다. 아무리 부자간에도 군신의 구별이 무서웠던 왕조 시대에 세자가 국본이라고 자칭하니 볼 때마니 민망하기 이를데 없었다.
 
어쩌다 알게 된 옛날 용어를 신중한 검증 없이 마구 남발한다고 해서 이 드라마의 품격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무게감만 떨어뜨리고 말았다.
 
어린 아이들까지 다 아는 얘기지만 태조 태종 세종 하는 묘호는 그 임금이 승하한 후에 올린 것이지 생전에 붙인 것이 아니다. 생전에 임금이 스스로 정해서 쓰던 연호와 다르다.
 
예를 들어, 청나라 4대 황제 강희제의 면전에서 신하가 “강희8년 친정하시면서”라고 할 수는 있지만 “성조8년 친정하시면서”라고 하면 바로 목이 달아날 얘기다. 성조(聖祖)는 강희제 사후 아들인 옹정황제가 붙인 것인데 강희제 생전에 그런 말을 하는 자체가 황제의 죽음을 예단하는 행위가 되거니와, 타임머신 기술 없이는 가능하지도 않은 얘기다.
 
톱스타 김태희와 연기파 이효정 성동일을 비롯해 출중한 연기자들이 투입된 SBS ‘장옥정, 사랑에 살다’가 첫 회 한번 기세를 올리더니 갈수록 떨어지는 시청률에 고전하고 있다고 한다.
 
연기가 어설프다고 해도 사극이라면 그마저 하나의 특색으로 궁합을 맞춰볼 수 있다. 하이힐이 등장한 장면은 ‘국민 사극’ 대장금의 가스 조리기구 소동에 비춰보면 용서 못할 흠도 아니다.
 
 
그러나 나중에 승하한 뒤 인현왕후의 시호가 붙여진다고 해서 민씨 댁 규수에게 “인현아”라고 부르는 건 참고 봐주기가 정말 어렵다. 못 볼 것을 본 듯 채널이 돌아가게 된다. 이런 애장난스런 극본을 연기력으로 승화시켜주는 건 최불암-김혜자 같은 ‘전설의 커플’도 어렵다고 본다.
 
무수한 장희빈 드라마 중에서도 이번 장희빈 드라마는 각별히 관심을 끌 요소가 있었다. 죽어서 300년이 지나도록 악독한 왕후 시해범의 누명을 쓰고 있는 장옥정을 새롭게 들여다 본다는 당초 기획의도를 들었다. 하이에나 같은 권력 탐욕자들이 나중에 힘 없는 여인 하나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과정을 어떻게 묘사할 건지도 궁금했었다. 이런 기대를 기사 하단에 소개된 앞선 글에 담았었다.

더욱이 주축배우들이 전에 없이 심기일전하고 있는 것도 크게 기대를 높이는 요소다.
 
그런데 난처해질 때마다 제작진은 ‘퓨전사극’이란 변명을 내놓고 있는데, 배우들을 생각해서라도 이는 버려야 할 아집이 아닐까한다.
 
물론, 지금까지 사례로 보건대, 비판을 허심탄회하게 수용해 대본을 손질하는 것보다는 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이 채널을 돌리는 게 더 손쉬운 방법이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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