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호황이 가라앉기 시작하던 무렵의 증권사 모습

▲ 사진은 2013년도 증권가 모습 /사진 출처=뉴시스

 

[초이스경제 장경순 경제칼럼]

[IMF, 실패한 보초병의 일기. 1] 1995년, 내 첫 직장이 산업은행은 아니다. 입행하기 전 한 달 동안 다닌 증권사가 있다.

증권사도 은행과 마찬가지로 금융기관의 하나다. 그러나 여기서의 한 달은 이후 산업은행에서의 근무와 참 다른 것들이 많았다.

달랐던 원인은 은행과 증권사, 국책 기관과 민간회사의 차이만은 아니었다. 내가 그때까지 본격적인 직장생활을 해본 적 없다는 점 또한 원인이었을 것이다. 한 달의 짧은 기간이지만 여기서 눈치껏 배운 것들로 사람 됨됨이가 조금은 바뀌었을 것이다.

이 증권사에서 어색한 것들이 몇 달 후 산업은행 입행 때는 익숙한 것들이 돼 있어서 두 곳이 다르게 느껴진 면도 있을 것이다.

1995년은 한국 경제가 위기 직전의 풍요를 누릴 때다.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후 취업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주식시장은 1993년 무렵의 호황이 가라앉으면서 조금씩 표정이 굳어지던 무렵이다.

해외 석사 학위를 우대한다는 증권사 공고에 통계학도 포함돼 있어 지원을 했더니 6월부터 출근하게 됐다. 근무 부서 이름은 '금융선물부'라는 생소한 이름을 갖고 있었다.

아침에 서울 동대문운동장역의 지하철 문이 열리면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기 전에 뜨거운 열풍부터 나온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지하철을 갈아타 대방역에서 내리면 직원들을 회사로 데려가기 위한 증권사들의 셔틀버스가 여러 대 대기하고 있었다.

멀지도 않은 거리 이 회사 저 회사 가리지 말고 아무 차나 올라타곤 했지만 개중에 유독 한 군데 자기 회사 직원들만 타야한다고 검사를 하는 증권사도 있었다.

오리엔테이션을 받으러가니 뜻밖에 짜증나는 구석이 하나 있었다. 그룹 회장의 경영지침이라고 지금 기억에 A4 용지 한 장을 넘는 내용이 있었는데 그걸 다 외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강사로 나선 인사부 차장은 ‘여기는 내 구역’이라는 자부심 드높은 표정으로 들어왔다. 그는 그룹의 임원들도 일제히 “회장님 앞에서” 외운 것을 테스트 받았다고 강조했다. 이 회사 계속 다니려면 외우는게 좋아보였다.

미국에서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학부를 다닐 때도 우리 지도교수 과목은 오픈북으로 시험을 쳤다. 나이 서른까지 학교를 다니다 뭐를 암기해야 된다는 세상에 다시 돌아왔다는 기분이 영 떨떠름했다.

또 다른 강사인 영업점의 간부는 강의 내내 '엘리엇 파동이론'을 신봉하는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까지 모든 주가 등락을 엘리엇 파동이론으로 설명하는데, 결과론적인 해석이란 인상을 받았다. 저것만 믿고 앞날을 예측하는 투자를 과연 해도 되나 의심스러웠다.

과연 그는 주식투자 손실로 인한 고객과의 마찰을 그때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강의 맨 처음 보드에 쓴 것은 ‘아줌마와 다른 고객’ 비교표였다. 다른 고객의 투자금은 여유자금인데 ‘아줌마 고객’의 자금은 전세금이란 것이다. ‘아줌마 고객’의 특기사항으로 ‘남편이 모름’이라고 적었다. 그리고 이들은 손실이 나면 “객장에 와서 드러눕는다”고 그는 설명했다.

오리엔테이션에서 우리 동기들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사람은 이사대우로 영업의 전설이라는 분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들으니 그는 자산가 한 명으로부터 수백억대의 예탁자산을 받아 회사의 실적을 급격히 올렸다고 한다.

이 사람은 강의 서두에 강의실 조명도 어둡게 하더니 자신은 아홉 번 죽을 생각을 했던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1987년 증권시장이 활성화 된 후 8년여가 지난 시점이었다. 그동안 주가지수 1000을 갔다가 급락하는 일이 몇 번 있었으니 그 때마다 증권사 사람들은 엄청난 파란을 겪어야 했다. 그가 말한 아홉 번은 그런 고비였다. 2년 후 전 국민이 경제위기로 끌려들어가는 ‘IMF 외환위기’가 벌어지기 전이다.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금융선물부로 찾아가니 부장은 나에게 많이 기대한다고 덕담을 했다. 외국 유명 대학 경영학 박사학위도 가진 분이었는데 그 말씀이 빈말은 아닌 것 같았다. 세월이 흐른 지금 생각해도 그렇다.

부장은 일과 시간 중 파생상품 세미나에 나를 자주 보냈다. 남상구, 김인준(이름이 같은 교수 두 명이 모두 유명했다), 장하성 등의 교수들이 연사로 등장했다.

여기서 내면에 약간의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여태껏 통계학만 공부해서 금융이나 증권도 생소한데 파생상품은 더욱 무슨 소린지 감이 오지 않았다. 들으려고 하다보면 생각은 어느새 딴 데로 달아나다가 졸기도 했다.

한 교수가 1995년 당시 세계 경제 흐름을 설명하는 세션이 됐다. 다른 세션과 달리 내용이 잡힐 듯하면서 흥미가 갔다. 단순히 들을 만하다는 정도가 아니었다. 기왕 지금까지 공부한 것과 다른 길을 간다면 저것이 좀 더 ‘국가적’인 일을 하는 내용이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경제 관련 일을 한다면 저런 것을 하고 싶다는 충동이 왔다.

민간회사에 취직해서 ‘국가적’인 것을 찾다니... 직장을 잘못 구한 것 아니냐는 생각이 더욱 짙어졌다. 이런 성향이 내가 국책은행으로 옮겨가고 더 나중에는 시비를 가리는 언론의 길로 들어선 것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된다.

세미나 자료에는 분자와 분모에 적분기호가 잔뜩 들어간 복잡한 수학 공식도 적혀 있었다. 통계학 석사는 했지만 그런 복잡한 수식을 풀어낼 엄두는 전혀 나지 않았다. 자료를 회사로 들고 오니 부장은 “이렇게까지 하는 건 그 교수나 하는 일”이라며 현업과 이론 사이 균형을 가지라고 당부했다.

세미나 참석 때문에 해프닝도 있었다.

다른 증권사에서 선물 관련 프리젠테이션을 한다고 해서 여기도 가보라는 지시를 받았다. 접수처에 명함을 넣고 자리를 잡았다. 가라고 해서 오는 세미나지만 내용은 하나도 이해를 못했다. 아마 부장 또한 내용 이해보다 이쪽 분야 분위기 파악하라고 보내는 것이라 생각했다.

시작을 기다리는데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주최 측 사람이 마이크를 잡더니 이 많은 사람 가운데 나를 찾는 것이었다. 순간 내가 이렇게 인지도 높은 사람인가하는 허황된 생각이 지나갔다.

조용한 곳으로 나를 데려간 직원은 “여기는 우리 고객들을 위해 우리 영업 노하우를 설명하는 곳이니 경쟁사 직원들이 있으면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입구에서 내가 낸 명함을 보고 나를 찾은 것이다.

상당히 경우에 없는 일을 겪었다고 생각하고 회사를 왔더니 이번에는 부장도 나에게 핀잔을 줬다.

“우리 회사라고 밝히고 가 앉아있으면 어떡해? 어디 기업 소속이라고 둘러대고 들어갔어야지.”

대꾸는 안했지만, 여기 업계는 전반적으로 상호간 교양이 없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학교만 다니다가 세상에 처음 나온 사람으로 상황 판단이 부족했던 것이라고는 아직 생각하지 못했다.

증권과 파생상품 관련 책을 몇 권 사서 보기도 했는데 이해 가는 부분도 더러 있었다. 그러나 이해 가는 부분도 낮에 회사에서 오가는 얘기에는 전혀 써먹을 데가 없었다.

재미없는 날들이 지속되니 증권사에 대해 익히 들어왔던 불안한 얘기가 자꾸 떠올랐다. 사돈에 팔촌을 팔아서라도 직원은 누구나 주식 투자금을 많이 끌어와야 한다는 얘기다.

부장은 “그런 걱정은 하지 말라”고 했다. 부장 말씀도 있고 나는 전문 분야에 들어와 있으니 객장에서 영업하는 사람들하고 같겠냐며 안심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오후, 역시 회사에서 별로 할 일이 없다는 게 문제가 됐다. 일이 없어서 여직원이 관리하고 있던 공문철을 쭈욱 넘겨보고 있었다.

어떤 직원이 여직원에게 성추행을 했다가 다른 남성 직원과 시비가 붙어 당사자들이 모두 징계를 받은 공문 내용은 이미 사람들 통해 알고 있었다. 그런저런 회사에 벌어진 일들이 공문철에 담겨있었다.

그 안에 B4 용지 크기 큼직한 첨부 문서가 달린 공문도 있었다. 제목이 ‘직원 예탁자산 유치 현황’ 이렇게 돼 있었다. 거기에는 직원들이 얼마나 주식 투자금을 회사에 가져왔는지가 적혀 있었다. 높은 분들은 당연히 꽤 많은 돈을 맡기고 있었지만, 사무실에 있는 세 명의 고졸 여직원들까지 할당량 대비 유치 비율이 적혀 있었다.

설마 여직원들한테까지 실적 못 채웠다고 구박이야 하겠냐 싶었지만, 이런 게 정말로 있다는 것을 드디어 확인했다.

업무에 재미를 못 붙이니 점점 회사뿐만 아니라 증권가 전체에 거부감을 갖는 것들이 늘어났다. 여성과 관련한 문화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2회] "증권사 여직원들 유니폼에 적응이 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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