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경제 장경순 칼럼]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 가운데 똑같은 두 사람은 절대 없듯, 역사적으로 한번 벌어진 사건이 두 번 다시 벌어지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역사를 교훈삼아 돌이켜보는 것은 세상 일이 돌아가는 이치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국정농단을 한 세력들이 철퇴를 맞고 새로운 시대에 대한 모색이 깊어지는 가운데, 외국과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는 지금과 비슷한 상황이 고려말 명나라와의 영토 갈등이다.

비슷한 배경정황은 우선 내부 정치다. 남의 땅을 뺏으려고 역모까지 뒤집어씌우며 국정을 농단하던 이인임 일파가 실각하고 최영을 중심으로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다. 아무리 왕조시대라지만 해도해도 너무하니까 이런 결과를 빚게 됐다.

외부요인인 중국 상황도 지금과 비슷한 점이 있다. 100년가량의 이민족 통치에서 벗어난 중국에 오늘날의 중화주의 비슷한 정서가 강해지고 있었다. 대륙을 통일한 명나라 개국황제 주원장이 고려에 철령 이북의 땅을 요구한 것은 이런 국가주의가 작용한 때문으로 추측한다. 주원장의 한족주의는 외형적으로는 기진맥진해 몽골 초원으로 패퇴한 원나라나, 고려 등 주변 국가들을 겨냥한 듯 하지만, 사실 이들은 힘으로 명나라에 맞설 처지가 아니었다. 주원장의 민족주의는 중국내부 다른 군벌들이나 조정안의 반대세력을 겨냥해 주원장을 중심으로 한 통합을 강조한 것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13년 집권 후 줄곧 ‘대국굴기’라는 포부를 내세우고 있다. 미국과 함께 세계를 이끄는 양대 강국의 위상을 굳힌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중국 또한 나름 복잡한 내부 사정을 갖고 있다.

시 주석은 2013년 집권 후부터 오랜 통치엘리트 그룹인 상하이방과의 갈등을 겪고 있다. 상하이방은 장쯔민-후진타오 전 주석의 20년 시대의 핵심 지배그룹으로 알려지고 있다. 개방정책을 이끌면서 엄청난 경제력을 가진 이들은 시 주석의 집권 이후 부패청산의 폭풍을 맞고 있다. 상하이방 인사인 저우융캉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의 지위에도 이례적으로 무기징역을 살고 있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만만치 않은 정적을 갖고 있는 국가지도자는 특히 대외 문제에 예민하다. 국가의 권위나 안전을 위협받게 만들었다는 반대파의 공세는 절대 피해야 한다.

중국이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에 저토록 격렬하게 반대하는 원인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중국 내부의 이러한 사정도 전혀 무관치는 않을 것이 분명하다. 한국이 중국을 설득하려해도 마땅한 방법을 찾기 힘든 이유도 여기에 있다.
 

▲ KBS의 2014년 드라마 '정도전'에서 서인석이 최영을 연기하고 있다. /사진='정도전'의 한 장면.


고려에서 이인임을 축출하고 새로 권력의 중심이 된 최영은 장수로서 매우 용맹하지만, 한편으로 장병들에게 지나치게 가혹했다는 비판을 얻고 있다. 그는 정치에서도 이런 앞뒤 안 가리고 돌진하는 태도로 일관했다.

명나라의 철령 이북 요구에도 오직 강공책으로 맞섰다. 요동정벌을 추진하다가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으로 실각하고 끝내 처형되고 말았다. 청렴하고 군공이 높은 최영에게 무엇 하나 일신관리의 트집 잡을 것은 없었지만, 국정을 맡은 사람으로서 현실을 무시한 이상주의는 용납되기 어려웠다.

주목할 것은, 명나라에 대한 강공 대응을 하던 최영이 실각했다고 해서 철령 이북을 빼앗긴 건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다고 새로 집권한 이성계가 명나라와 딱 부러진 담판을 한 것도 아니다.

세월이 가면서 어느덧 철령은 양국의 외교현안에서 사라져갔다. 근본이유는 명나라로서 이 문제에 집착할 실익이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철령 문제는 다른 이슈로 변형돼 조선과 명나라 간에는 두 나라 개국 초 끊임없이 마찰이 벌어졌다. 두 나라간 감정의 앙금은 남아있던 것이다. 양국이 외교 갈등을 완전 해결한 것은 조선에서 3대 태종, 명나라에서도 3대 성조 영락제가 즉위해 강력한 집권 세력을 형성한 뒤다.

물이 높은데서 낮은 곳으로 흐르고 기압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바람이 부는데, 물줄기와 바람을 거꾸로 돌릴 수는 없다.

다만 사람의 힘으로, 거센 물줄기를 누그러뜨리거나 폭풍을 피할 뿐이다. 일시적으로 피하기 힘든 일이 벌어졌을 때, 억지로 뒤집으려고 하면 최영의 요동정벌과 같은 결정적 패착이 나온다.

역사책을 읽는 우리가 결과를 아니까 편하게 얘기하는 측면은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해결될 문제를 무리하게 요동정벌을 하려다가 더 큰 국난을 자초할 뻔 했다.

일부에서는 한반도를 떠난 전술핵까지 다시 거론하는 모양인데, 답을 찾다찾다 못 찾아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이 참에 자기 이미지를 한번 과시하려는 속셈인지 알 길이 없다. 백번을 양보한다 해도 최영의 요동정벌 만용보다 좋게 평할 수는 없다. 이런 사람들은 ‘전술핵’이란 용어에서 ‘전술’은 한국마저 전술의 도구로 삼는 강대국의 전술이지 절대 한국의 전술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늘상 애국자인척 하는 사람들이 하던 얘기를 실질적으로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까지 입에 담게 되면 그날 주식과 환율을 비롯한 금융시장은 어떻게 될 것인가. 오늘날에 이르러 누가 최영이고 누가 이인임인지, 그리고 또 누가 이성계인지를 가리는 하나의 요령은 시장과 경제를 살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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