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에서 배우는 경영통찰력(시리즈 15)...인권퍼스트의 광고가 주는 교훈

▲ 김병희 교수

[외부 기고=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한국PR학회 제15대 회장]

  “이 쓰레기 ○○야” (이OO  OO산업 부회장)
  “내가 인간 조련사다” (김OO OO식품 전 명예회장)
  “이 ○○야, 내가 아직 있는데 문은 왜 잠그냐?” (정OO OO그룹 전 회장)
  “이 ○○, 병신 ○○. 이런 것도 안 챙기냐? ○신아” (정OO OO스틸 사장)
  “○○같은 ○○, 애비가 뭐하는 놈인데 (…) 니네 부모가 불쌍하다. ○○야” (이OO OO제약 회장)
 
이상은 최근 언론에 소개된 최고 경영자들의 갑질 어록이다.

거기에 비하면 영화 <베테랑>(2015)에서 역대급 갑질 캐릭터인 재벌3세 조태오로 열연한 유아인이 화물차 운전기사 정웅인에게 내뱉어 극중에서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어이가 없네”는 양반이다.

그 뿐이겠는가.

각종 거래에서 발생하는 갑을 관계를 비롯해 교수들의 갑질도 있다.

국어사전에도 올라있는 갑질. 국어사전에서는 갑을 관계에서의 ‘갑’에 어떤 행동을 뜻하는 접미사 ‘질’을 붙여 만든 말로, 권력의 우위에 있는 갑이 권리 관계에서 약자인 을에게 하는 부당 행위를 통칭하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갑질 문제가 얼마나 심각했으면 공정거래위원회까지 나서 업체의 갑질 차단을 강화했을까 싶다.

지난 6월 22일, 공정거래위원회는 대형 유통업체나 프랜차이즈 업체가 계약 갱신을 거절할 수 있는 기준을 홈페이지나 별도 서면으로 납품업체에 통지하도록 했다. 표준거래계약서를 마련하고, 업체의 갑질에 대한 과징금을 두 배로 올렸으며, 표시광고, 방문판매, 전자상거래 같은 소비자 보호 분야에서도 제재 수준을 강화했다.

갑질은 결국 인권 침해로 이어진다. 상대가 사람이라고 생각해 인권 문제를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갑질은 일어나지 않는다. 사람의 소중함을 알리기 위해 단체명을 ‘인권 먼저’라고 강조한 광고 한 편을 보자.

 

▲ 사진=김병희 교수 제공

 

비영리 인권단체 인권퍼스트(Human Rights First)의 인터넷 광고 ‘증언’ 편(2008)에서는 인권 단체에서 일하는 이유를 설명함으로써 인권의 중요성이 저절로 부각되도록 했다.

이 광고에서는 “~때문에 인권퍼스트에서 일하는 것을 좋아한다”라는 미완성의 문장을 여러 사람들에게 제시하고 빈 칸에 각자의 생각을 써 넣어 문장을 완성해 나가는 형식을 갖추고 있다.

9명의 직원들은 인권퍼스트에서 일하는 이유를 자신의 필체로 다음과 같이 썼다.

“삶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사람들과 일하기 때문에” “우리의 행동이 우리의 말과 일치하기 때문에” “우리가 생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모두가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변화를 주어야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삶의 변화를 돕기 때문에” “우리는 확실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환상적인 동료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을 믿기 때문에”
 
이 광고는 인권퍼스트의 인지도를 이전보다 31%나 높이며 세계 유수의 비영리 인권 단체로 부각시키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인권의 중요성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 직원들이 일하는 이유와 보람을 소개함으로써, 인권이 먼저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우회적으로 느끼게 했기에 가능한 성과였다.

1978년에 설립된 인권퍼스트는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두고 워싱턴, 휴스턴, 로스앤젤레스, 텍사스 등지에서 활동하고 있다. 언론에 인권보호변호사위원회(Lawyers Committee for Human Rights)로 소개되기도 하지만, 인권퍼스트가 정식 명칭이다. 직원을 채용할 때도 인종, 피부색, 신념, 종교, 나이, 성별, 성적 취향, 애정 취향, 성 정체성, 결혼 상태, 출신 국, 시민권 지위, 장애 등에 있어서 차별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단체다. “미국의 이상, 보편적 가치(American ideals, universal values)”라는 슬로건에 걸맞게, 인권퍼스트는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지키는 선구자의 역할을 수행했고, 이 순간에도 미국을 넘어 전 세계의 인권문제에 관여하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갑질을 할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완장만 차면 그 이전과 달라지는 사람들을 숱하게 봐왔다.

1971년에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심리학과의 필립 짐바르도 교수가 실시한 ‘감옥 실험’은 인간이 쉽게 갑질을 할 수 있다는 시사점을 제시했다. 대학생 24명을 선발해 죄수와 교도관 역할을 무작위로 맡겨 건물 지하의 가짜감옥에서 살게 하자 그들은 빠르게 자기 역할에 적응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교도관 역할을 맡은 학생들이 권위적으로 행동했고 심지어 죄수 역의 학생들에게 갑질에 해당되는 가혹 행위도 했다. 결국 예정된 14일을 채우지 못하고 6일 만에 실험이 중지되었다.

이런 현상은 2002년에 영국에서 실시한 ‘BBC 감옥 실험’에서도 나타났다.

마케팅 전문가 안혜령의 『I am a Marker』(2015)에서는 독자 자신이 갑의 성향인지 을의 성향인지 따져보라고 권고한다. 저자는 “을의 침묵은 갑의 통찰력에 대한 경외심이 아니라 돈을 지불하는 자에 대한 겸양에 불과하다”고 꼬집고, 을은 일에 대한 안목을 가진 갑을 만나기를 원하며 갑질도 일을 통해 제대로 해야 빛난다고 강조했다.
 
갑질의 당사자들은 여론의 지탄을 받으면 곧바로 사과하는 자리를 마련해 따끔한 질책과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고 자숙의 시간을 갖겠노라는 천편일률적인 사과문을 발표한다.

그러면 모두 면책이 되는 것일까?

숱한 사과에도 불구하고 갑질의 근절은 요원해 보인다. 우리사회가 그만큼 건강하지 못하다는 증거일 터.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데만 신경 쓰느라 인권은 경시해온 경영자들이여! 이제는 시장 점유율보다 마음 점유율(mind share)을 높일 때다. 사람에 대한 진심어린 배려가 마음 점유율을 높인다. 갑을 관계를 깨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갑질만 하지 말고 갑(甲)의 질(質)을 높이기를 바란다. 그것만이 존경받는 갑이 되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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