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에서 배우는 경영 통찰력(시리즈 21)...스마트폰 중독 타파한 맥쿼리 사전 광고

▲ 김병희 교수

[외부 기고=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한국PR학회 제15대 회장] 용기를 내 어렵게 고충을 털어놓는 자리인데도 상사는 이야기를 듣는 건지 마는 건지 계속 문자를 주고받는다. 밤새워 작성한 결재 서류 내용을 설명하는데, 경영자는 대강 고개만 끄덕이며 고개를 숙인 채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린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들떠있는데 상대방은 어디선가 걸려온 전화를 받느라 20여분을 혼자 있게 만든다. 이상은 우리네 일상에서 자주 목도할 수 있는 스마트폰의 폐해다. 스마트폰의 폐해나 중독 현상을 꼬집는 광고가 있다.

 

▲ 사진=김병희 교수 제공

호주의 맥쿼리 사전(Macquarie Dictionary) 광고 ‘퍼빙’ 편(2013)에서는 새로운 단어를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단어의 탄생”이라는 자막과 함께 광고가 시작된다. 두 여성이 의자에 앉아 있는데, 한 사람이 열심히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자 다른 한명은 멀뚱히 지켜보고 있다. 스마트폰을 더 좋아해 바로 앞에 있는 사람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면서 이런 현상을 설명해줄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흘러나온다.
 
이어지는 장면부터는 2012년 5월에 시드니대학교에서 실제 있었던 토론 현장을 그대로 보여준다. 호주 멜번 지역에 있는 광고회사 맥캔에서는 시인, 작가, 언어학자, 음성학자, 토론대회 우승자, 크로스워드 퍼즐 창안자를 비롯한 10여명을 시드니대학교에 초청해, 두 명 이상이 만나는 자리에서 휴대폰에 집중하느라 상대방과 소통하지 않는 현상을 설명할 새 단어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그때까지 적절한 단어가 없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 이상이 만나는 자리에서 휴대폰을 자주 쓰기 때문에 마주 앉은 사람과는 상호작용 하지 않는 현상을 뜻하는 명사를 만들어달라고 한 것. 신조어의 기준은 광고 자막에도 등장한다.

몇 시간 동안의 브레인스토밍과 난상토론 끝에 마침내 ‘퍼빙(phubbing)’이라는 단어가 탄생한다. 폰(phone, 전화기)과 스너빙(snubbing, 무시, 냉대, 모욕)을 조합해서 만들어낸 신조어였다. 퍼빙은 다른 사람과 대화하면서도 전화기에만 관심을 쏟거나 함께 있는 사람은 신경 쓰지 않고 스마트폰에 빠져 있는 현상을 뜻하는 단어로 소개되었다. 이 말이 180개국 이상으로 퍼져나갔다는 <가디언>지의 보도 내용과 “언어는 항상 변화한다”는 자막에 이어, 맥쿼리 사전 6판을 곧바로 살 수 있다는 메시지가 나오면서 광고가 끝난다.
 
사전 판매 메시지는 마지막 2초 정도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 광고로 인해 맥쿼리 사전에 대한 인지도가 24%가 올라갔고 판매율도 12%나 증가했다. 호주의 저명 대학 맥쿼리대학교에서 발간하는 맥쿼리 사전은 1981년에 초판을 발간한 이후 2017년 현재 7판이 나왔다. 이 광고는 2013년에 나온 6판을 알리는 광고였다. 2012년에 23세의 호주 대학원생 알렉스 헤이(Alex Haigh)가 전 세계의 언론에 ‘퍼빙 중지(Stop Phubbing)’ 캠페인을 하자고 제안한 이후 ‘퍼빙’이라는 신조어가 급속히 확산되었다. 이후 맥쿼리 사전은 사전을 알리는 효율적 수단으로 신조어를 적절히 활용했다. 2016년에는 올해의 단어로 ‘가짜 뉴스’를 선정함으로써, 맥쿼리 사전은 세계인의 이목을 끌어들이는데 성공하기도 했다.
 
퍼빙의 속뜻에서 알 수 있듯이, 모바일 미디어는 전혀 새로운 사회관계 양식을 만들어 냈다. 예컨대, 절친 사이인 ‘가’와 ‘나’가 오랜만에 만났는데 그 자리에 없는 ‘다’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고 하자. ‘나’는 전화를 받았고 중요한 일도 아닌듯한데 통화가 길어진다. 그러자 슬슬 짜증나기 시작한 ‘가’는 갑자기 지인들에게 문자를 보내기 시작하고, 친구 간의 대화는 끊어진다. 이처럼 물리적 공간을 함께 나누고 있는 대면 관계가 모바일 미디어에 의해 가상적인 관계와 중첩되면서 무력화되는 현상을 이중 관여(dual engagement)라고 한다(송종현, 2015, 『모바일 미디어와 일상』). 다시 말해서, 물리적 공간을 함께하는 ‘가’와 ‘나’는 하나의 사회관계를 형성했다. 그러나 ‘나’는 외부에 있는 ‘다’와 통화해 가상의 사회관계를 동시에 형성함으로써 이중 관여의 상태에 놓이게 된다. 결국 ‘가’와 ‘나’ 사이에는 관계의 공통 기반이 사라지고, 급기야 ‘가’는 무기력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이중 관여는 스마트폰이 초래한 사회관계의 병리 현상이 분명하다. 모든 것을 스마트폰으로 시작해서 스마트폰으로 끝내는 호모스마트쿠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면서 거리를 걷는 사람을 좀비에 빗댄 스몸비(smombie). 머리 숙인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중국과 대만에서 만든 신조어 띠터우주(低頭族, 저두족). 하루 종일 고개를 숙인 채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수그리족...... 이밖에도 스마트폰에 관련되는 신조어들이 많다. 더욱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길을 걷는 사람들이 많아, 미국의 워싱턴DC나 중국의 충칭에 이어 우리나라에서도 스마트폰 사용자를 위한 전용 보도의 설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퍼빙에 대한 우리말 번역어는 아직 없다. 전화와 무시를 조합해 ‘폰무시’라고 하면 어떨까? 젊은이들 사이에서 ‘개무시’라는 말도 두루 쓰이고 있는 판에, 그보다 점잖은 폰무시라는 말이 번역어로 타당하지 않을 이유는 없겠다. 직장 상사들이여, 부하 직원들과 상담할 때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지 말자. 여러 경영자들이여, 직원들이 밤 새워 작성한 결재 서류를 설명하는 자리나 그들의 말을 들어주어야 할 자리에서 절대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자 말자. 잠시 스마트폰을 중지했을 뿐인데 직원은 상사가 자신의 말을 진지하게 경정해준 것으로 생각해, 회사에 엄청난 성과를 가져다줄 수도 있다. 그리고 연인끼리, 친구끼리, 가족끼리, 그 밖의 여러 관계에서 끼리끼리 마주 앉은 자리에서 10분에 한 번씩 스마트폰을 체크하는 중독과 조급증에서, 제발 벗어나자. 사람과 사람 사이에 스마트폰만 있다면 결국 관계의 단절만 초래한다. 퍼빙 중지, 혹은 전무시 타파! 관계 회복을 위해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 할 시대적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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