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에서 배우는 경영 통찰력(시리즈 23)... 'I♥NY' 광고가 시사하는 교훈

▲ 김병희 교수

[외부 기고=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한국PR학회 제15대 회장]

  “가족 같은 회사”
  “가정 같은 직장”

사람들이 일자리를 알아보려고 검색해보면 이런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고 한다. 일터의 분위기가 가족처럼 따뜻하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지만, 10명 미만이나 50여명 정도의 소규모 사업장을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경우가 많다.

가족 같은 회사라니? 남과 섞여 일하는 직장에서 가족의 개념이 성립할 수 있을까?

좋은 점도 있겠지만 불편한 점도 많을 터. 부모가 자녀의 사생활에 시시콜콜 관여하듯, 직장 사람들이 업무가 아닌 사생활에까지 지나친 관심을 보인다면 퍽 피곤해지겠다. 가족 같은 분위기를 유지하려고 업무 효율성을 놓쳐버리면 주객이 전도된다. 가정 같은 직장과 업무 성과 사이에서 가치의 충돌을 피하기 어렵다. 경영자가 주창하는 가정 같은 직장이 아니라, 직원들 스스로가 일터를 집처럼 느끼고 사랑하는 분위기가 저절로 형성된다면 그보다 좋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런 일터는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 밀턴 글레이저가 냅킨에 스케치한 초안 /사진=김병희 교수 제공
▲ 종이를 오려붙인 시안 /사진=김병희 교수 제공
▲ '나는 뉴욕을 사랑해. 뉴욕은 당신을 사랑해.' 인쇄광고 /사진=김병희 교수 제공
▲ '나는 뉴욕을 사랑해. 뉴욕은 당신을 사랑해.' 인쇄광고 /사진=김병희 교수 제공

미국 뉴욕주의 ‘나는 뉴욕을 사랑해(I♥NY)’ 캠페인(1977)은 어떻게 해서 시민들이 도시를 자기 집처럼 느끼고 사랑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1970년대에 접어들어 전 세계는 제1차 유류파동으로 극심한 불황을 겪었다. 당시 뉴욕주는 10억 달러의 적자가 누적되었고 실직자가 30만 명이나 되었다. 파업이 계속되고 범죄율도 증가해 도시 분위기가 뒤숭숭했다. 그러자 뉴욕주 상무국에서는 불안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시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제시할 공공 캠페인을 기획했다. 웰 리치 그린(Wells Rich Greene)이 공공 캠페인을 대행할 광고회사로 선정되었다.

광고회사는 뉴욕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뉴욕 시민들이 겉으로는 불만을 토로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뉴욕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광고회사는 이를 디자이너 밀턴 글레이저(Milton Glaser)에게 설명하고 공공 캠페인에 필요한 그래픽 작업을 의뢰했다. 뉴욕의 실체가 아닌 정서적 가치를 느끼도록 하는 것이 핵심 과제였다. 몇날 며칠 동안 불면의 밤을 보내던 그는 어느 날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번쩍 영감이 떠올라 냅킨에 ‘I♥NY’를 스케치했다. 그는 스케치한 냅킨을 택시 안에서 광고주에게 보여주며 브리핑을 끝냈다. 달리는 택시 안의 소박한 프레젠테이션에서 시작된 캠페인은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라는 성경 말씀대로 되었다.
 
인쇄광고에서는 “나는 뉴욕을 사랑해”의 운율에 알맞게 “뉴욕은 당신을 사랑해(New York Loves You)”라는 대구법 헤드라인을 써서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 캠페인은 뉴욕 시민들에게 자신들이 뉴요커라는 자부심과 공동체적 소속감을 불어넣으며, 전문가가 주도해서 상징물을 표현하는 1세대 도시 브랜드의 대표 사례로 자리 잡았다.

뉴욕을 사랑하자는 이 캠페인은 은연중에 소속감을 느끼게 한다. 도시 브랜드의 성공 사례로 손꼽히고 일부 시민들의 지지도 받았지만 처음에는 너무 평범하다는 비판 여론이 많았다. “나는 뉴욕을 사랑해”가 어떻게 세계도시인 뉴욕을 상징할 수 있겠느냐는 비난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 캠페인은 뉴욕 시민이라면 도시를 더 좋게 만드는데 모두가 참여해야 한다는 소속감과 책임감을 느끼게 하는데 성공했다. 반대하던 시민들도 더 좋은 뉴욕을 만들기 위해 쓰레기도 함부로 버리지 않는 등 차츰 시민의식을 발휘했다. 뉴욕 시민으로서의 소속감을 강하게 느꼈던 것.
 
소속감은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에서 생리적 욕구와 안전 욕구 다음의 세 번째 단계에 해당된다. 하지만 소속감이라 하더라도 이성적 측면과 정서적 측면에서 차이가 크다. “어디서 일하세요?” 이렇게 물으면 바로 대답하지 않고 조금 생각하고 나서 대답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가족이 몇 명이세요?”하면 생각하지 않고 바로 대답한다. 이처럼 생각해서 말하는 소속감과 자연스럽게 느끼는 소속감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이 캠페인은 뉴욕이라는 도시를 자신이 사는 거대한 가정처럼 시민들에게 느끼도록 정서적 태도를 바꿨다.
 
뉴욕의 도시 이미지를 향상시킨 이 캠페인은 지난 40여년 동안 세계 각국으로 퍼져나가 도시 브랜딩의 중요성을 환기하면서, 여러 도시의 브랜드 마케팅 활동에 영향을 미쳤다. 밀턴 글레이저는 9·11 테러가 일어나자 뉴욕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뉴욕의 로고를 다시 디자인해 “나는 뉴욕을 더 사랑해(I♥NY More Than Ever)”라는 포스터를 제작했다. 이 포스터는 2001년 9월 19일자 뉴욕 <데일리 뉴스(Daily News)>에 게재되었고, 뉴욕 시민들로부터 엄청난 호응을 얻었다.

▲ 서울특별시의 "I·SEOUL·YOU" 조형물 /사진=김병희 교수 제공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도시 브랜딩 작업이 활발하다. 뉴욕의 사례는 늘 벤치마킹의 대상이 된다. 2015년 10월 28일에 발표된 서울시의 “I·SEOUL·YOU”도 처음에는 비판과 논란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호응하는 시민들이 늘어나 여러 영역에서 활용되고 있다. 처음에 비판하던 뉴욕 시민들이 생각을 바꿨듯이 말이다. 도시 브랜드 캠페인에서 앞으로의 과제는 무엇인가? 서울시를 비롯한 여러 도시에서는 시민들에게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를 거대한 가정처럼 느낄 수 있도록 정서적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 브랜드 캠페인 활동을 전개해야 한다.

가족 같은 회사나 가정 같은 도시는 정말 멋지다. 구성원들이 가족처럼 소속감을 진하게 느끼는 직장이나 도시가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직장 경영자나 도시 경영자들이여! “가족 같은 회사”나 “가정 같은 도시” 같은 구호만으로는 절대로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말로만 소속감을 강조하지 말고, 구성원들이 저절로 정서적 소속감을 느끼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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