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기업인의 트레킹 이야기(6)...추사 김정희의 비문 또한 예사롭지 않은 곳

▲ 박성기 대표

[외부 기고=박성기 도보여행가, 도서출판 깊은 샘 대표] 상사화(相思花)는 우리나라가 원산지인 8월 더운 여름에 피는 꽃으로 연분홍이나 노란색이다. 우리 고향 고창에서는 난초라고도 불렀다. 9월 중순부터 선운사와 불갑사를 붉게 물들이고 있는 것은 상사화라 잘못 부르고 있는 꽃무릇이다. 꽃의 모양이 비슷하고,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하기에 그렇게 부르게 된 것이다. 사랑하는 이들이 영원히 만나지 못하고 그리워 한다는 상사화의 슬픈 전설이 아프다.<필자 주>


◆ 선운사 상사행 (2017년 9월 16일, 토요일)

▲ 선운사 일주문 /사진=박성기 대표 제공

이른 새벽 선운사에 들어섰다.

추석 전 벌초를 핑계 삼아 토요일과 일요일 선운사와 불갑사의 꽃무릇을 구경하기 위해서다. 작년은 극심한 가뭄 탓에 제 빛을 잃고 곱지 않았기에 이번 상사행(相思行)은 기대가 크다. 일주문을 지나 우측에 선운사를 두고 좌측으로 길을 잡았다. 막 동이 튼 새벽인데도 출사객들은 저마다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분주하다.

도솔천 좌측을 따라 도솔제까지 올랐다가 다시 휴게소 삼거리에서 선운사 방향 따라 내려오는 비교적 짧은 거리를 택했다. 너무 일러 아직 만개하지 않은 꽃들이 많다. 선운사 꽃무릇은 만개하려면 불갑사보다 늦어서 4~5일은 더 지나야 할 것 같다.

▲ 도솔천 물에 비친 꽃무릇 /사진=박성기 대표 제공

꽃무릇 꽃 한 송이가 도솔천을 가로지르는 물위에 제 낯을 비추고 산들바람에 한들한들 몸을 흔든다. 등이 휜 나무 등걸 위로 세 송이의 꽃이 고개를 내민다. 아름답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무사이로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 군락을 이룬 꽃무릇 /사진=뉴시스

선운사 천왕문을 지나 아래로 다시 일주문을 향해 내려갔다. 담벼락 끝 긴 목을 내민 꽃무릇 무리를 지났다. 붉은 안개처럼 흩어진 꽃무릇을 지나면 왼쪽 담장 안으로 많은 부도비가 보인다. 다가서니 백파선사 비문이 우뚝하다. 추사 김정희가 죽기 1년 전 썼다는 백파선사 비문이다. 추사 글씨의 뜻은 모르겠으나 필치가 예사롭지 않다.

이쪽저쪽에선 무거운 카메라를 짊어진 출사객들이 연신 셔터를 누르며 다양한 모습의 꽃무릇을 담고 있다.

선운사 상사행을 짧게 마치고 오전 벌초를 하러 같은 고창군내 해리면으로 향했다.


◆ 불갑사 상사행 (2017년 9월 17일, 일요일)

▲ 꽃무릇을 찍는 출사객들 /사진=박성기 대표 제공

불갑사 주차장에 도착한 시간이 새벽 6시 30분이다. 이른 아침임에도 축제기간이라 주차장엔 차량이 가득하다. 불갑사 들어오는 길 수 킬로 전부터 길가엔 꽃무릇이 끝없이 늘어섰다. 축제를 준비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산사 음악회를 하려는 무대도 벌써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

일주문을 지나니 불갑사까지 이어진 공원엔 가득 익은 꽃무릇이 지천이다. 저마다 좋은 자리를 잡고 꽃무릇을 구경하고 있다. 서로가 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꽃말이 무색하게 연인들은 사랑스런 포즈로 앵글을 맞춘다.

불갑사 높다란 담장엔 꽃무릇이 줄지었다. 불갑사 천왕문을 지나 담장을 끼고 우측 옆으로 돌아갔다. 불갑사 뒤 법성봉에서 내려오는 산자락은 꽃무릇으로 가득한 군락지다. 셀 수 없이 많은 꽃들이 제 모습을 자랑을 하고 있다. 불갑사 저수지를 끼고 도는 좌측 산자락은 물색에 어울려 만개한 꽃무릇이 더 붉다. 선운사보다 더 무성하고 가득한 걸 보니 이곳이 4일 정도 이르게 피는 것을 알겠다.

▲ 불갑사 저수지에 비친 하늘과 꽃무릇 /사진=박성기 대표 제공

불갑사 저수지는 하늘에 구름까지 담았다. 물 위에 비친 하늘엔 이루지 못한 사랑을 노래하듯 꽃 한 송이가 하늘거리고 있다. 저수지를 지나 꽃길을 따라 걸었다. 산길로 접어들었다.

▲ 구수재 오르는 길 /사진=박성기 대표 제공

해불암과 구수재 갈림길인 동백골에 가득한 꽃무릇은 자그마한 계곡 따라 물에 비치기도 하고 바위틈 머리를 살짝 내밀기도 하며 계속 길을 냈다. 얼마 안 있어 나무들 사이로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침 상쾌한 공기를 맡으며 콧노래 부르다보니 벌써 구수재다. 재에 오르는 동안 길이 융단을 밟듯 편안했다.

구수재에는 여름에 피는 노랑 상사화 군락지가 있는 곳이다. 오는 동안 돌 틈 사이로 아무렇게나 피어 군락을 이룬 꽃무릇의 모습이 여느 군락과는 달리 맘에 많이 와 닿는다. 나무와 나무사이 숨어서 언뜻언뜻 비추는 꽃들이 더 아름다웠다.

▲ 가장 마음에 남아있는 녀석은 숨어서 제 모습 살짝 보여주던 이 꽃이다. /사진=박성기 대표 제공

등산객들이 구수재 정자에 앉아 허기를 때우고 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는 다시 불갑사를 향해 내려오기 시작했다. 오를 때와 다르게 나무숲 사이로 햇빛이 내리기 시작했다. 어두운 숲으로 빛은 꽃을 찾아 내리고, 나무와 돌 틈사이로  숨은 꽃에 정신없이 앵글을 맞추다보니 어느새 불갑사다. 시간이 잊고 있었다. 벌써 네 시간이 흘렀다. 갑자기 허기가 진다.

9월 백로에 접어들면 선운사나 불갑사에는 꽃무릇이 피기 시작한다. 절정을 이루어 산을 붉게 물들이면 색의 강렬함에 차라리 눈을 감았다. 내겐 떼지어 늘어선 꽃도 좋으나, 길섶 아무렇게 핀 꽃이 요란하지 않아서 더 좋다.

참고로 일본에서는 꽃무릇을 저승화라 부른다. 꽃송이 하나하나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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