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에서 배우는 경영 통찰력(시리즈 27)...지금은 허위 광고 안 통해

▲ 김병희 교수

[외부 기고=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한국PR학회 제15대 회장]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우리 브랜드를 널리 알려야죠.”
 
어떤 회사의 경영 자문회의에서 최고 경영자가 내린 명령이다. 직원들은 받아 적기에 바빴다.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홍보(PR)를 중시하는 세태라 최고 경영자가 그렇게 주장하는 것도 이해할만 하다. 틀렸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런 발언이 전적으로 옳다고 할 수도 없다. 경영자들이 생각하는 수단과 방법이란, 내용을 전달하는 미디어나 플랫폼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네 일상생활에서도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을 알려 페친(페이스북 친구)이 몇 명이고 자기 의견에 몇 명이나 ‘팔로우’하는지 살피는 경향이 있다. 오죽했으면 관심받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빗대는 ‘관종’(관심종자)이라는 속어까지 생겨났겠는가.

백번 양보해서 수단 방법을 다 동원하는 데 동의한다 해도, 무엇을 어떻게 알릴 것인가 하는 핵심이 빠져있다. 허위나 과장에 가까운 부도덕한 내용도 무조건 널리 알리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가장 중요한 것은 내용이다. 소설의 히트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광고 사례에서 내용의 진정성 문제를 생각해보자.

▲ 소설 『달과 6펜스』 초판의 속표지 겸 광고(1919) /사진=김병희 교수

두루 알다시피 소설 『달과 6펜스(The Moon and Sixpence)』(1919)는 서머싯 몸(W. Somerset Maugham, 1874-1965)의 대표작이다. 박완서 선생이 화가 박수근을 모델로 삼아 『나목(裸木)』(1970)을 썼듯, 서머싯 몸은 후기인상파 화가 폴 고갱을 생각하며 이 소설을 썼다.

런던에서 증권 중개인으로 일하던 40대의 찰스 스트릭랜드가 예술적 충동에 사로잡혀 타히티 섬으로 떠나, 그곳에서 원주민 여인을 만나 두 아이를 낳고 살면서 나병에 걸려 죽기 전까지 많은 그림을 남긴다는 내용이다.

이 소설에서는 예술의 세계(달)와 생활의 세계(6펜스)가 어째서 양립하기 어려운지 진지하게 생각하도록 한다. 예술가로 살아가려면 도덕이나 관습에서 얼마나 자유로워야 하는가의 문제도 이 소설에서 제기하는 핵심 주제 의식이다.
 
이 작품의 줄거리를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는 없겠다. 다만 『달과 6펜스』가 어떻게 해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는지에 대한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생계를 유지하기도 힘들었던 무명 작가시절, 서머싯 몸은 어렵사리 소설집을 출간했지만 책이 팔리지 않아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출판사에서는 책 광고도 내주지 않고 손을 놓아버렸다. 오랫동안 공들여 쓴 소설이 팔릴 기회조차 없을 거라는 생각에 잠 못 이루던 작가는 자비로 신문광고를 내기로 마음먹었다.

몇날 며칠 광고 아이디어를 궁리하던 그는 적은 광고비로 효과 만점인 아이디어를 찾았다고 무릎을 치면서 신문사에 찾아갔다. 다음날 아침 영국 런던의 신문 지면에는 이런 구혼광고가 실렸다.
 
“마음씨 곱고 자상한 여성을 찾습니다. 저는 스포츠와 음악을 좋아하며, 성격이 비교적 온화한 백만장자입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딱히 없습니다만 최근에 나온 서머싯 몸의 소설 『달과 6펜스』의 주인공과 닮은 여성이면 좋겠습니다. 저의 이상형이니까요. 자신이 서머싯 몸이 쓴 소설의 여주인공과 닮았다고 생각하시는 분께서는 망설이지 말고 즉시 연락주세요.”
 
광고가 나가자 폭발적인 반응이 나타났다. 여성들이 서점에 옥시글옥시글 몰려들어 초판이 모두 팔려나갔고 계속 재판 삼판을 찍어야 했다. 그 후 이 작품은 베스트셀러가 되어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번역 출판되었고, 작가도 광고 내용처럼 실제로 백만장자가 되었다.

여세를 몰아 4년 전에 출판됐지만 주목받지 못했던 『인간의 굴레』(1915)도 재평가를 받아 몸은 작가로서의 날개를 달았다.

만약 구혼광고를 내지 않았더라면 서머싯 몸의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는 기발한 광고를 해서 스스로의 명성을 만들어냈지만, 그와 같은 허위광고나 과장광고가 오늘날의 스마트 미디어 시대에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광고 내용과는 달리 『달과 6펜스』에는 찰스 스트릭랜드라는 가상의 남자 주인공만 부각될 뿐 여주인공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이 소설에는 두 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블란치’, 스트릭랜드의 그림 모델을 하다가 남편 더크를 버리고 스트릭랜드를 사랑했지만 결국 자살을 택하는 여자다.

‘아타’, 타히티 섬에서 스트릭랜드와 살림을 차리고 두 아이를 낳고 살았던 원주민 여인이다.

어디까지나 두 사람은 여주인공이 아닌 보조자일 뿐이다. 이런 사정도 모른 채 광고 내용에 홀려 소설책의 이 페이지 저 페이지를 뒤적거리며, 자신과 여주인공의 닮은 점을 찾아내려고 눈에 불을 켰을 1919년 시절 영국 여성들의 열기가 상상만으로도 뜨겁게 느껴진다. 요즘 기준에서 보자면 서머싯 몸이 냈던 구혼광고는 허위광고일 뿐이다.
 
구혼광고는 주목을 끌고 흥미를 유발한 다음, 욕구와 기억을 거쳐 구매행동을 일으켜 톡톡한 광고효과를 보았다. 어디까지나 지금부터 100여 년 전인 1919년에 일어난 현상이다. 스마트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현명한 소비자들은 이런 메시지에 절대로 속아 넘어가지 않는다. 경영자들의 생각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알리기만 한다고 해서 광고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광고 내용이 허위라는 사실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확산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뿐이다.
 
따라서 사실을 흥미롭게 전달하는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한다. 가히 스토리텔링의 시대라고 할 만큼 이야기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상황에서, 소비자의 마음을 얻으려면 이야기 가치, 상호작용, 입소문이라는 3가지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인간에게는 이야기하려는 본능이 있고, 사람들은 이야기를 통해서 사회를 이해한다. 일찍이 호모 나랜스(homo narrance, 이야기하는 사람)라는 라틴어가 존재했듯이, 인류사는 이야기의 역사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어약(耳於藥, 귀로 먹는 약) 혹은 이어약(利於藥, 먹는 약보다 더 이로운 것)이란 술어에서 이야기라는 말이 유래했다.
 
사람들은 약이 될 만한 진정성 있는 내용을 감쪽같이 알아본다. 그런데도 무조건 널리 알릴 방법만 찾는데 골몰하면 뭐하겠나? 받아들이는 사람이 그 내용에 동의할 수 없다는데. 목이 마르다, 철저히 사실에 입각해 흥미로운 이야기로 구성해내는 잘 표현된 진실(well-told truth)에 정녕 목이 마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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