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자본-산업자본 차단은 국제 시장에도 존재한다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요즘 한국축구가 외국인 축구감독을 찾기 위해 부심하듯 1997년 외환위기, 즉 IMF위기 직후 한국은 외국은행자본을 찾느라 부심하고 있었다.

부실해진 몇몇 은행을 이들에게 맡겨 선진금융을 배우자는 것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로 부실해진 제일은행은 1999년 해외투자자본인 뉴브릿지캐피털에 매각됐다. 매각대금은 5000억 원에 불과했다.

헐값매각 논란뿐만 아니라 제대로 된 외국 금융자본을 찾은 것이냐는 비판이 나왔다.

뉴브릿지가 제일은행을 경영하면서 보인 몇몇 행태도 국내의 기대와는 너무나 달랐다. 첨단 금융을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소액 계좌에 수수료를 물리는 것부터 도입했다. 거스 히딩크같은 명장이 아니라 어디 축구감독이나 해본 적 있는 사람을 데려 온 것이냐는 의혹과 비슷했다.

뉴브릿지는 논란 가득한 5년 경영을 하다 2005년 제일은행을 스탠다드차타드에 매각했다. 이 때 매각대금은 3조4000억 원으로 알려졌다. 말하자면 제대로 된 외국인 감독이 이때서야 나타난 것과 비슷했다.

5년 전, 헐값매각에 제대로 된 은행자본을 못 찾았다고 비판하던 사람들은 자기들의 주장이 입증됐다고 강조했다.

스탠다드차타드는 실제로 국제적으로 은행업을 하는 잘 알려진 곳이다. 이런 곳을 5년 전에는 왜 못 찾았냐는 것이었다. 매각대금도 단순 계산으로는 1999년 2조9000억 원을 덜 받고 판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 주장을 스탠다드차타드 입장에서 해석하면, 왜 5년 전에 사겠다고 나서지 않아서 몇 배나 많은 돈을 주고 뒤늦게 사들였냐는 것이 된다.

사실, 스탠다드차타드 뿐만 아니라 HSBC 등 많은 외국 은행자본들이 1999년의 제일은행 매각을 몰랐던 것은 아니다.

한국 금융당국도 이런 은행자본들에게 먼저 은행 매각을 타진했었다. 이들은 이 때 제일은행을 사들이면 훨씬 낮은 금액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들은 인수에 나서지 않았다.

비슷한 과정을 거친 시중은행은 또 있다. 제일은행처럼 부실한 곳은 아니었지만 한미은행 역시 정통 은행자본이 아닌 칼라일에 먼저 매각됐다가 나중에 씨티은행 소유가 됐다.

그럼에도 이들 해외은행 주주들이 뒤늦은 인수로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을 지불했다고 비판했다는 얘기는 거의 듣지 못했다. 오직 한국정부가 졸속으로 헐값매각을 했다는 비판에만 5년 째 시달렸다.

금융업, 특히 은행업의 속성에 비춰보면 외국은행들이 2000년을 전후한 시점의 인수에 나서지 못했던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이런 속성을 당시 한국에선 잘 몰랐을 뿐이다.

특히 제일은행은 IMF위기뿐만 아니라 한보사태로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어마어마한 부실을 해소하기 위해 상상을 초월하는 구조조정을 해야 했다. 자산과 인력 모든 측면에서다.

인력 구조조정이란, 사람 해고하는 일이다. 이런 악역은 국제금융시장의 정통 은행자본들에게는 금기사항이다. 은행 브랜드에 치명타를 가하는 것이다.

제일은행이 먹기 좋은 싼 가격에 매물로 나왔지만, 먹고 싶어도 먹지 못한 사정이 여기에 있다. 그런 악역을 담당하는 것은 스탠다드차타드나 씨티은행, HSBC 같은 은행들이 아니라 뉴브릿지와 같은 투자펀드들이었다. 국내에서는 이들을 투기자본으로 부르기도 했다.

이 사례는 은행업이 갖고 있는 업무의 복잡한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 은행을 소유하게 되면 그 때부터 해서는 안될 일이 다른 업종보다 특히 더 많이 늘어난다. 해당국가의 법률 뿐만 아니라 국제 금융시장의 관습에 따른 제약이 더욱 커지는 것이다.
 

▲ 25일 국회 정무위원회에 출석한 최종구 금융위원장. /사진=뉴시스.


법률을 안 지키면 처벌을 받고, 금융시장의 관습을 무시하면 은행 브랜드가 추락하게 된다.

멀쩡하게 제조업을 하던 사업가가 은행을 사들이게 되면, 이제 그의 모든 사업이 이런 제약을 받을 것을 각오해야 된다.

한국에서는 이런 금융과 비금융 간의 이질적 ‘유전자구조’에 대해 생소한 면이 있다. 금산분리, 특히 은산분리를 강조하는 법이 있어서 아예 이를 생각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은산분리 법이 없는 외국에서도 은행과 제조업을 함께 영위하는 경우는 여태 들어본 적이 없다. 법은 없어도 시장의 작동원리에 비춰볼 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은행가가 물건 만드는 공장도 함께 경영하면, 그의 은행가로서 권위가 추락한다. 제조업자가 은행을 인수하면 그 때부터 금융당국의 엄청난 자금거래 감시를 벗어나지 못한다. 처음 운영했던 제조업체는 이런 단속으로는 도저히 경영불가다.

한국에서는 은산분리법 때문에, 왜 은행자본과 산업자본이 자연히 구분되는지에 대해 오히려 더 무지해진 듯하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25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인터넷은행을 위해 은산분리를 완화해 달라고 요청했다.

은산분리를 완화해도 된다는 사람들은 사후 감독으로 대응하면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금융당국이 언제 분식회계에 대해 99년 징역형은 고사하고 30년 형이라도 내려 본 적이 있나. 처벌은 둘째 치고 적발은 제대로 하는지조차 의심을 사고 있다.

최근만 해도 그렇다. 주식시장에서 공매도 행위가 벌어지고 몇몇 굵직한 회사가 분식회계 시비를 초래했는데 금융위는 투자자들을 충분히 납득시켰다고 자부하는가.

한국의 금융당국이 분식회계를 초기단계에서만 제대로 대응했어도 4대 재벌이었던 대우는 여태도 건재했을 것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대우그룹의 총수가 바뀌었을 수는 있다.

은산분리의 실행당국인 금융위원회 총수가 먼저 은산분리를 풀어달라고 간청하는 모습이 심히 보기에 불편하다. 은산분리가 있는 상태에서의 금융 감독은 제대로 했는지. 그나마 은산분리마저 후퇴하면 그 실력으로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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