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토론회에서 한국 경제의 펀드멘털에 대해 거의 ‘천기누설’에 가까울 정도로 심도 있는 진단을 내린 현오석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이 말미에 유럽 위기에 대한 재미있는 비유를 꺼내 놓았다.

 
그는 현재 유로존 위기의 본질은 한마디로 마치 골프클럽에 자격이 안되는 회원들을 가입시켜 낭패를 본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유했다. 
 
그는 “유럽위기는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됐다”고 밝혔다. 그중에서도 지난 1999년 단일 통화인 유로화를 도입한 것이 화근이라고 지적했다.
 
유로화가 지나치게 고평가된 상황에서 유럽 경제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던 남유럽 국가들의 팔자가 갑자기 변했다. 저금리의 유로존에 가입했다는 사실에 취해 채권 발행을 남발하고 장기저리의 돈을 가져다가 흥청망청 썼다. 빚이 겉잡을 수 없이 늘어나면서 오늘날의 위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현 원장은 골프클럽에 120타(18홀기준)를 치는 자격미달 회원이 들어와 클럽을 망친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유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또 그리스 실태와 관련해 지난 2월 그리스대학 교수와 나눴던 얘기를 소개했다.
 
이 교수가 소개한 바에 따르면 그리스에선 여자 공무원이 52세가 되면 퇴직을 할 수 있는데 그에 따른 연금수혜가 기막히다. 이들 퇴직자에겐 무려 월급의 90%를 연금으로 지급하고 있는 데 아직까지도 이런 폐단을 고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
 
현 원장은 또 “과거의 그리스는 성장률이 매우 높은 나라였다”고 했다. 그런데 이 와중에 좌파가 집권하면서 복지부문에 과용을 한 것이 화근이 됐다. 당시 우파가 야당이었는데 우파도 이런 좌파의 (복지)정책에 동의 하면서 오늘날 상상하기 어려운 복지파탄을 낳았다는 것이다.
 
현원장은 그러면서 그리스 대학교수가 “요즘 한국도 과거 그리스와 비슷한 복지 이슈가 부각되고 있는 걸로 아는데 상황이 어떠냐고 묻더라”고 덧붙였다.
 
듣기에 따라서는 현오석 원장의 비유가 정파적이고 귀에 거슬릴지도 모른다. 현 원장 자신이 소위 ‘MB맨’으로 KDI원장을 역임하는데 그저 궁하면 색깔론이냐며 반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날 토론회의 분위기는 여야나 보혁의 진영논리 따위와는 격이 달랐다. 그가 잠재성장 3%대로 이미 추락을 시사한 대목은 관변 연구단체에서는 정말 원장이 자기 자리를 걸어야만 가능한 얘기다.
 
무엇보다도 그리스 실패 사례는 분명하게 한국에 시사할 점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정치권에서 보수-진보의 조율 엔진이 실종된데 따른 부작용이다.
 
지난해 서울시장이 바뀌는 과정에서는 ‘무상 급식’이 커다란 계기가 됐다. 이를 반대하는 여당의 서울시장이 자리를 걸었다가 시민들의 호응을 얻지 못하자 스스로 물러났다. 그리고는 야권의 시장이 새로 당선됐다.
 
실제를 잘 들여다보면 사실, 무상급식은 그다지 큰 변수가 되지 못했다. 특히 그 무렵 유권자들은 이 정권이 싫었을 뿐이다. 무상급식은 떨떠름하거나 아예 뭔지 관심도 없지만 아무튼 여당이 싫다는 사람이 많았다는 얘기다.
 
그런데 여당은 이것을 자신들에 대한 대중의 혐오로 해석하기를 거부했다. 복지정책이 선거에 먹히는 카드라고 오판했다. 그래서 꺼낸 게 무상보육이다. 지금 무상보육은 예산이 다 떨어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특히 부지런하기로 소문난 한국의 국민성이다. 남유럽과 같은 포퓰리즘 과잉이 만연할 토양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모든 정파가 “지금은 복지만 해야 표가 나온다”고 오판한다면 남유럽 같은 위기가 오지 말란 법도 없다.
 
명심해야 할 1997년 외환위기, 즉 ‘IMF’의 교훈이 있다. 그때도 한국 국민들은 여전히 부지런했었다. 하지만 극소수 어리석은 통치자들의 국가형편에 대한 무식함과 무분별한 정책이 엄청난 국가위기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저작권자 © 초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