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기술 만능주의'가 경영으로 이어졌다가 '무식하다'는 의원들에게 혼쭐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페이스북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무식하다는 미국의회 의원들한테서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호통만 들었다. 의원들을 무식하게 만들었던 당사자가 1년 전의 페이스북인 것을 생각하면 더욱 처참하다.

왜 이렇게 됐을까.

결론은 지나친 오만이 기업경영으로 이어져 함부로 넘보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데 있다.

데이비드 마커스 페이스북 부회장은 17~18일 이틀 동안 미국의회에 출석해 증언했다. 말이 증언이지 사실상 미국 의원들의 초당적인 질타를 받았다. 페이스북이 내년 가상통화 리브라를 발행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서다.

외신보도에 따르면, 일부 공화당 의원들이 민간기업의 활동을 보장해야 한다는 발언은 했지만, 개인적인 견해일 뿐이다. 최근 리브라에 대해 본격적인 포문을 처음 연 사람은 이들과 같은 당 소속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미국과 영국의 첨단기술 전문매체인 아스테크니카는 마커스 부회장의 출석 후 "페이스북이 야심찬 리브라 계획에서 페달을 거꾸로 돌리고 있다"고 전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 /사진=AP, 뉴시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 /사진=AP, 뉴시스.

1년 전에는 페이스북 때문에 미국 의원들이 "무식하다"는 비판을 들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회장의 의회 출석 때였다. 저커버그 회장은 의원들의 기본지식이 부족한 질문에 "죄송합니다. 의원님, 질문을 이해 못했습니다"는 겸손한 말투로 대응했지만, 이 장면을 지켜본 사람들은 의원들의 한심한 수준이라고 조롱했다.

이는 미국뿐만 아니었다. 한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에서도 컴퓨터 좀 안다는 많은 사람들이 의회 생중계화면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리면서 똑같은 조롱을 했다.

의회는 특정수준 이상의 지식을 가진 사람만 대변하는 곳이 아니다. 모든 국민을 대변한다.

좀 아는 사람들한테는 유치하지만, 상당수 국민이 의심을 갖고 있으면 그런 질문을 던져서 책임 있는 위치의 사람에게서 답변이 나오도록 하는 임무를 갖고 있다.

간혹 의원의 존재부각을 위해 어처구니없는 질문을 던져 의정시간 낭비를 초래하는 문제는 있지만, 의회 본연의 민의대변에 비춰보면 피할 수 없는 속성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저커버그 회장이 의회에 출석한 자체가 페이스북의 고객정보 관리 실패 때문이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또한 저커버그 회장이 의회증언은 의기양양하게 마치고 돌아갔지만, 똑같은 문제가 이후에 또 터졌다.

이렇게 본연의 의무도 소홀히 한 페이스북이 가상통화 문제에까지 뛰어들었으니 의원들이 가만 있을 리 없었다.

고객정보 문제에 비해 가상통화와 통화정책은 의원들이 페이스북 경영자들보다 훨씬 더 전문적 능력을 가진 분야다. 마커스 부회장은 이래저래 이번 증언에서 멀쩡하게 돌아올 수가 없었다.

리브라 책임자라 해서 마커스 부회장이 출석했지만, 저커버그 회장이라해도 이번에는 별다른 훌륭한 답변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고객정보 관리 때 "의원님 질문을 이해못했습니다"라고 하면, 의원의 '무식함'에 대한 우회적 지적이었겠지만, 통화정책 질문을 그렇게 대답했다면 "그것도 모르면서 어떻게 가상통화 발행을 생각했나"라는 질타로 이어졌을 일이다.

셔로드 브라운 민주당 상원의원의 지적은 페이스북 경영진의 뼈를 가루로 만들 지경이다. 미국 허핑턴포스트의 보도에 따르면 그는 "페이스북의 기록을 보면, 이들에게 사람들 계좌를 가지고 실험할 기회를 주는 것은 위험하다"며 "통화정책과 같은 이해도 못하고 있는 강한 수단을 활용하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상황이 이러니 마커스 부회장이 내놓은 해명은 "바로 이런 지적을 듣기 위해 1년 전에 발행계획을 발표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페이스북은 리브라 발행 무기연기를 발표했다.

첨단기술 만능주의에 빠지는 오류가 연구·제조 실무진들의 퇴근 후 '포장마차 객담'에서 머물지 못하고 회사 경영으로까지 이어졌다가 초래한 대망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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