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금융 라응찬 회장은 1990년대 이후 금융권의 ‘황제’처럼 군림했던 인물이다.

 
1991년 신한은행장으로 취임할 때만 해도 후발은행의 수장이란 위치에 머물렀다. 이른바 ‘조상제한서’(조흥 상업 제일 한일 서울)라는 선발 시중은행들에 비해 신한 하나은행은 후발 주자로 간주됐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로 신한이 일약 우량은행으로 발돋움하면서 그의 위상도 급격히 상승했다. 1991년부터 신한은행장을 9년 연속 맡았고 2002년에는 국내 최고(最古)은행인 조흥은행마저 인수해 금융권에서 위상이 최정상급으로 발돋움 했다. 2000년 신한은행장의 임기가 끝난 뒤엔 신한은행 이사회 의장이 됐지만 이때부터 실질적으로 훗날 지주회사가 되는 신한금융 회장의 자리를 차지했다.
 
1990년대 금융계에서 라 회장과 비슷한 위상을 지녔던 하나은행의 윤병철 행장이 우리금융 회장을 거쳐 자연스럽게 물러나는 과정을 밟았던 것과 달리 라응찬 회장은 자신의 자리를 2010년대 들어서도 계속 지키려고 했다. 이같은 자리 집착은 금융 당국으로부터도 끊임없는 경계의 눈초리를 초래했다. 일본 또는 중국을 오가면서 신한금융 주주와 2세들을 만나는 등의 정황은 끊임없이 당국에 의해 체크됐다.
 
라응찬 회장은 자신의 회장 4기 연임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치권과 비자금 의혹으로 얽히고 신한금융 내에서는 최고 경영진 인사들끼리 서로를 고발하는 극도의 추태를 연출하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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