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르곤 이야기 3] 홍타이치-도르곤의 애증, 순치제까지...

 갑자기 무서운 표정으로 모든 사람들의 앞에 나타난 이복형. 전쟁터에서 전사한 부왕의 유언을 밝히는 자리였다.

 
부왕 누르하치의 유언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어머니 오라나랍 씨를 순장하라는 것이었다.
 
생전에 부왕이 가장 뜨겁게 사랑한 어머니였다. 그런 여인을 “질투로 변란을 꾀했다”며 자결을 명하다니...
 
이제 14세에 불과한 도르곤이 부왕에 이어 생모를 잃게 된 정황이다.
 
▲ 중국드라마 대청풍운에서 누르하치의 애첩 오랍나라씨가 휘장 뒤에서 목에 줄을 걸고 순장에 임하는 모습(위). 생모의 최후를 어린 도르곤 삼형제가 지켜보고 있다(아래).

왕위를 이은 홍타이치가 과연 누르하치의 유언을 조작해 오라나랍씨의 죽음을 강요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아무튼 오라나랍 씨는 죽음에 임해 홍타이치에게 자신의 소생 아지거, 도르곤, 둬둬 세 형제의 목숨만큼은 보장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부왕 생전, 왕중의 왕처럼 귀한 존재이던 삼형제는 창졸간에 사고무친의 외로운 처지가 됐다.
 
그러나 역사는 이때부터 더욱 미스테리한 조화를 부렸다. 엄마의 원수일지도 모르는 홍타이치가 도르곤을 만주 최고, 더 나아가 아시아 최고의 걸출한 영웅으로 키워나간 것이다. 정변에 능한 홍타이치라도 오라나랍 씨와의 마지막 약속을 떨쳐내지 못한 것일 수도 있고, 순전히 영웅이 영웅을 알아본 것일 수도 있다.
 
일부에서 전하는 내용에 따르면, 누르하치 생전 도르곤은 동복동생인 둬둬보다 뒷전인 신분이었다고 한다. 오히려 도르곤의 지위는 홍타이치의 치세에 들어 수직으로 상승해 2인자의 자리까지 올라갔다.
 
엄마의 원수이면서 평생의 은인. 홍타이치를 바라보는 도르곤의 심정은 복잡할 수 밖에 없었다. 엄마의 원수를 갚느냐, 지금까지 모든 은혜를 보답하느냐. 일단 후자를 택하면 목숨이 위험해지는 일은 면할 수 있었다.
 
▲ 중국 드라마 대청풍운에서 쟝웬(姜文)이 홍타이치를 연기하는 모습. 그의 출연은 초반 몇회에 불과했지만 폭발적인 카리스마로 인해 제작사는 그를 도르곤 역의 장펭이, 효장문태후 역의 허청과 함께 주연의 한 사람으로 소개했다. 냉철한 군주이면서도 고뇌에 가득한 모습을 훌륭하게 연기했다.
군사 뿐만 아니라 정략에 능한 홍타이치는 자신을 원수로 여길지도 모르는 이복동생이지만 호랑이처럼 키우고도 충분히 통제할 수 있는 계책이 가능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이 천명이다.
 
부왕처럼 홍타이지도 한참 국력이 뻗어나가던 와중에 뇌출혈로 급사한 것이다. 그의 나이 51세였다.
 
권력의 균형추는 순식간에 도르곤에게 밀려오는 듯 했지만 뜻밖에 홍타이치의 아들 호격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만주족 특유의 의정회의를 거듭한 결과, 홍타이치의 아홉째 아들인 여섯살 복림(세조 순치제)을 후계 임금으로 정하고 도르곤은 섭정왕의 지위를 얻었다.
 
보위를 얻지 못해 완벽한 승리는 아니었지만, 반대파를 자제시키면서 시간을 벌었다. 그리고 여섯살 꼬마의 섭정왕이니 사실상 임금이나 다름없는 권력을 갖게 됐다. 그는 차례차례로 호격을 비롯한 반대파를 제거했다.
 
1643년 이후 도르곤 인생에서 가장 미묘한 문제는 꼬마황제와의 관계였다. 촌수로는 숙부와 조카 사이, 그러나 이 꼬마의 아버지는 엄마를 죽인 원수이면서도 평생의 은인이었다.
 
복림의 아버지 홍타이치와의 복잡 미묘한 관계 그대로 도르곤은 복림과의 숙질 관계를 이어가게 됐다.
 
복림의 수호신으로 전혀 손색이 없는 섭정왕으로 그는 중국 대륙 전토를 평정해 조카에게 바쳤다. 망한 나라를 다시 세우거나 국토를 열배 이상 개척한 임금 만이 가질 수 있는 세조(世祖)라는 묘호가 훗날 복림에게 붙은 것은 오로지 도르곤의 덕택이다.
 
그 대신, 도르곤은 홍타이치와, 복림, 그리고 이들의 자손이 대대로 치욕으로 여길 보복을 안겨줬다. 복림의 생모 박이제길특 씨(효장문태후)를 자신의 아내로 맞아들인 것이다.
 
유목민의 풍속에 형사취수란 것이 원래 존재했으니 만주족 지도부 내에서 누가 반대를 하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갈수록 유교의 영향을 입으면서 국가 체제를 갖춰가는 마당에 많은 사람을 민망하게 만드는 일이기도 했다.
 
복림의 어린 가슴에 심어진 원한은 도르곤 사후의 부관참시에서 표출되고 만다. 100년쯤 되는 세월이 지나, 건륭황제는 도르곤을 성종 의황제로 복권은 하되, 각종 사적에서 도르곤의 형사취수 사실은 삭제를 명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 도르곤 자신이 이복형 홍타이치의 서슬에 눌려 원한을 삭히면서 그가 베푸는 은혜를 입었던 것과 같은 삶을 복림 또한 걸어가게 만들었다.
 
우리 역사에서 도르곤이 특히 눈길이 가는 것은 그가 조선으로부터도 공주를 요구해 결혼했다는 것이다. 바로 의순공주의 남편이 된다. 의순공주는 정식 공주는 아니지만 당시 왕실의 공주는 너무 어려서 종친 가운데 특별히 선택된 규수다.
 
의순공주가 도르곤에게 시집간 1650년은 도르곤이 사냥터에서 사고로 죽는 때다. 곧이어 도르곤의 집안이 박살나는 난리 속에 의순공주는 다른 청나라 왕족의 아내로 넘겨졌다가 새 남편마저 죽자 조선으로 돌아왔다. 지키는 도리는 못하고 타박하는 습성만 발달한 이 땅의 못난 남자들로부터 못된 눈초리 속에 쓸쓸한 나날을 보낸 의순공주는 6년 후 세상을 버렸다.

JTBC 드라마 ‘꽃들의 전쟁’에 등장하는 도르곤은 예전 한국드라마에서의 무지막지한 오랑캐 장수 이미지를 탈피해 눈길을 끌고 있다. 이 드라마가 당시의 치열한 여러 국내외 정황에 좀더 진지하게 접근하고 있다는 하나의 방증으로 여겨진다. 다른 부분에서는 소홀함이 더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고는 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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