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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들의 뼈가 쌓인 '우골산', 어떻게 변했나
소들의 뼈가 쌓인 '우골산', 어떻게 변했나
  • 장경순 기자
  • 승인 2020.02.16 15: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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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기본임금', 공짜로 주는 월급이 아닌 '인생담보'로 접근해야 한다
사진은 본문의 특정한 내용과 무관함. /사진=뉴시스.
사진은 본문의 특정한 내용과 무관함. /사진=뉴시스.

[최공필 박사,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미국 대통령선거가 벌어지는 2020년 2월 현재 민주당의 마이클 블룸버그는 아직 후보로서 제대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 정치권에서는 그가 민주당 후보가 될 경우 제법 트럼프 대통령과 경합을 벌일 수는 있지만 가장 큰 난관이 민주당 경선 통과라고 보고 있다.

그가 경선 출마를 선언할 때 다른 민주당 후보보다 트럼프 대통령과 비교하는 질문이 나왔다.

"재벌과 재벌의 대결에서 과연 어떤 점이 트럼프 대통령과 다른가"였다. 이에 대해 블룸버그는 "나는 학자금 대출로 대학을 다녔다"고 답했다.

미국에서는 꽤 오래전부터 학자금 대출이 대학생활의 일부나 마찬가지지만 한국에서는 1990년대까지 존재하지 않는 단어였다.

학자금 대출로 인해 젊은이들이 출발도 하기 전에 멍에를 짊어진다고 한탄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게 그렇게만 볼 일도 아니다.

학자금 대출이란 말이 있기 전에는 이 자리를 차지한 단어가 '우골산'이다. 농사짓는 부모가 똑똑한 자식 대학을 보내기 위해 소 팔았다는 의미다. 부모들이 판 소의 뼈가 수북이 쌓여 산을 이룬 것이 대학이라는 비유다. 단지 소만 판 것이 아니고 논밭도 팔아가며 자식을 대학 보냈다.

'우골산'시대는 그나마 부모가 소나 밭이라도 있어야만 대학 진학이 가능했다. 오로지 모든 것이 부모의 능력과 의지, 결단에 달려있던 이런 것이 '학자금 대출'시대는 상당부분 자녀의 역량분야로 옮겨졌다. 그만큼 사회에서 대학진학에 관한한 기회의 폭은 넓어진 것이다.

기회의 폭이 넓어졌지만, 대학 들어갈 때 대출의 짊을 짊어지는 부담이 그 댓가로 발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 사회는 젊은이들이 학자금 대출을 받아서라도 대학을 졸업한 뒤가 더욱 문제다. 마땅한 일자리가 없다.

단순히 자산만이 아닌 생산수단이었던 소와 밭까지 팔면서 교육을 시킨 시대는 자식이 대학만 가면 그 이상의 소득을 올릴 수 있을 것이 확실했었다. 지금은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이 또 문제다.

항상 대중적 인기에만 몰두한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무슨 수당을 도입해서 이들의 환심을 사려고 한다. 이런 수당이 본질적으로 모든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만든다는 사실은 어디가지 않는다.

일부 산업현장에서는 일해야 마땅한 젊은이들이 그나마 수당이 몇 푼 나오는 바람에 더 일할 생각을 안한다는 비판을 제기한다.

상당히 와닿는 문제 지적이지만, 막상 젊은이들 당사자의 얘기를 들어보면 단지 수당남발뿐만 아닌 사회구조적인 문제도 있다.

'노느니 나와서 일을 하라'고 내놓는 일자리들이 해도 너무한 것이다. 세상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꼰대'스런 조직문화는 여전하고, 이것이 오히려 더 살벌한 '갑질'로 나타나기도 한다.

비교적 먼 훗날의 얘기일 수 있지만, 이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 질 것이다. 왜냐하면 산업현장에서 사람이 하는 역할은 더욱 축소되기 때문이다. 기계나 AI가 더 많은 역할을 수행하면 난이도가 낮은 일을 하는 사람의 중요성은 더욱 떨어진다. 경제외적인 사회적 이유로 불가피하게 채용한 사람들이 더욱 더 푸대접을 받게 될 것이다.

가뜩이나 갈수록 마음이 여려진다는 젊은 사람들인데 이런 '눈칫밥'을 견디기 어렵다. 부모는 "집에서 뒹굴 거리느니 나가서 허드렛일이라도 해"라고 다그치는데 애들이 "엄마 아버지는 모르는 얘기 좀 그만해"라고 대드는 것 가운데 일부는 이런 사정을 담고 있다.

1980년대에 비해 한국인들의 수명이 크게 늘어나 지금은 '고령화 사회'의 문제가 외신에서도 자주 거론된다.

이래저래 한국사회는 사회의 새로운 일꾼이 되기 위한 교육시간을 더 늘려야만 할 강요를 받고 있다.

여태 생산을 못하고 있는 우리의 젊은이들이 어떻게 해야 '젊음의 예기(銳氣)'를 잃지 않을까.

놀고 있다고 해서 '체제로부터의 일탈'이 돼서는 안된다.

선심성 수당의 남발이 문제인 점은 분명하지만, 북유럽 선진국의 기본임금 실험은 이와는 접근 방식이 다르다. 무엇보다 정치인들이 너도나도 세금으로 선심 쓰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통합해서 미래를 연구하는 차원에서 다루고 있다.

사회에 필요한 인력의 교육기간이 길어졌다는 관점에서 기본임금은 진지하게 연구할 여지가 있다. 다만 무조건 돈을 쓰고 보자는 식이어서는 안된다. 학자금대출처럼 이 사회의 새로운 성원들에게 부모가 부자든 빈민이든 가리지 않고 일단은 그들의 미래가치를 믿어야 한다. 믿음에 부응하지 못한 경우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이것에 대한 연구와 함께 기본임금, 즉 무상임금에 대한 고민이 이뤄져야 한다.

한국은 가난한 집에서 자라 혼자 힘으로 대학을 마친 사람들이 자수성가로 대기업을 만들고 일류은행의 최고경영자가 되는 것을 지켜봤다. 이런 것이 과연 지금의 20대 들에게 가능할까.

'흙수저'부모의 자식이라고 해서 젊은 사람들의 '인생'이라는 엄청난 가치의 담보를 너무 무시하고 있다. '개천의 용'을 이대로 놔두면 바다로 쓸려 내려가 진짜 용이 된 뒤 내 고향이 어딘지도 모르는 무서운 존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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