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와 사도세자(장조)의 비사에 대해서는 세자의 광태(狂態)에 따른 비극이란 주장과 정권유지를 위한 음모의 희생자란 주장이 대립하고 있다.

 
양쪽 얘기를 모두 참고하면서 한중록을 읽어보면 눈길 가는 부분이 세자의 온양행이다. 세자빈 혜경궁 홍씨(경의왕후로 추존)는 “온양에 그 무슨 볼 것이 있으리요” 해서 세자가 아무런 민폐도 안 끼치고 금새 다시 서울로 돌아오니 행차가 오고가는 길에 백성들이 모두 나와 세자를 칭송했다는 것이다. 세자는 또 곧바로 평양을 갔다 와서 얼마 안 있다 부왕으로부터 변을 당하게 된다.
 
도성의 백성도 임금을 접하기 힘든 시절에 온양의 백성들이 열렬히 환호했다는 부분은 부왕인 영조의 입장에서 상당히 껄끄러운 얘기가 된다. 이는 영조 뿐만 아니라 한국과 중국의 모든 임금들이 저군(儲君. 태자 또는 세자)들과 가장 큰 갈등을 빚은 요소다.
 
원래부터 의심 많은 영조였는데 온양의 소식이 부자의 정리를 내던진 극단적 선택에 전혀 영향이 없다고 하지 못할 것이다.
 
청나라 최고의 명군인 성조 강희제는 60년의 원기왕성한 치세를 누렸지만 마지막 10여년은 스물네 아들의 후계다툼에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 강희제의 둘째 아들이자 태자였던 윤잉. 그의 폐위와 함께 청나라에서는 태자를 책봉하는 제도도 폐지해 황제가 유지에 후계자를 남기는 방식으로 변경했다.
너무나 사랑했던 첫 번째 황후의 죽음을 슬퍼해 강희제는 그녀의 소생인 차남 윤잉을 두 살에 태자로 책봉했었다. 하지만 ‘최후의 승자’는 넷째 윤진(세종 옹정제)이었다.
 
그렇다고 윤진이 태자의 반대파도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태자당’의 기둥으로 첫째 형, 여덟째 동생으로부터 헌신적으로 둘째 형을 지켜냈다. 이들은 모두 이복형제다.
 
태자의 행실이 못마땅해 강희제는 윤잉을 폐위하기에 이른다. 그러자 무수한 신하들이 여덟째 윤사에게 몰려가는 것을 보고 두려움을 느껴 다시 윤잉을 복위시켰다. 이는 소설 뿐만 아니라 역사에도 전해지는 내용이다.
 
하지만 복위된 태자 윤잉은 어설픈 병권 발동으로 이제 돌이킬 수 없는 부황의 의심을 초래하고 말았다. 그는 다시 폐위돼서 별궁에 갇혀 생을 마감했다.
 
강희제 승하와 함께 제위를 물려받은 윤진은 황자 시절 온갖 내무를 도맡다시피 했지만 한 번도 병권을 가져본 적이 없다. 덕택에 24형제의 10년 암투에서 상처, 즉 아버지의 의심을 받는 일을 면했다.
 
▲ '24황자 로얄럼블' 최후의 승자 윤진. 그가 제위를 차지한 요인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아버지 강희제의 의심을 가장 적게 받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제왕가의 임금과 아들인 저군들 사이에 분명한 원칙은, 공은 나눠도 덕은 나눌 수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부자간이라 해도 인덕만큼은 나눠줄 수가 없다. 이게 나눠져 있음을 발견하는 순간 천륜도 내던져버릴 위협을 느끼게 된다.
 
세자가 베풀어야 할 덕은 오히려 아버지가 훗날을 위해 남겨주는 방식이 돼야 한다.
 
예를 들어, 조선의 현종이 모후의 시앗들에 해당하는 효종의 후궁을 후히 대해주도록 부왕에게 요청하니 효종의 대답은 “이것은 네가 훗날 그들에게 인정을 베풀도록 남겨두려는 것이다”고 대답하는 이치다.
 
총수 부재의 고난 속에서도 한화그룹이 흔들리지 않고 국내외에서 돋보이는 활약을 펼치는 것은 지극히 반가운 소식이다. 10대 그룹의 저력을 실감나게 하는 대목이다.
 
예전 다른 재벌들이 이런 경우에 “회장님 없어서 경영이 안된다”며 우는 소리를 하던 것과 의연하게 소임을 다해가는 한화의 모습이 뚜렷이 비교된다.
 
재계 일각에 따르면 현재 한화 임시 체제를 이끌어가는 김승연 회장의 장남 김동관 한화솔라원 기획실장의 리더십이 녹록치 않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아버지의 공신들과 일하는 입장이라면 김 실장이 무엇보다 부드러운 면모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나만 생각하고 둘은 외면하는 발상이라고 본다. 나중에 김 실장이 정식으로 경영을 승계 받았을 때나 나올 법한 소리다. 아무리 수감 중이라 하나 지금 한화그룹의 주인은 김승연 회장이다. 아직은 김 실장이 덕을 베풀어야 하는 시기가 아니라는 얘기다.
 
지금의 김동관 실장으로서는 오히려 그룹의 고위직들과 가능한한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이 아들의 도리에도 타당하고 또 훗날 더 크게 베풀 수 있는 여지도 마련하는 길이다.
 
주인과 후계자 사이 절대로 나누지 못하는 것이 바로 인덕이다. 어려운 비상시기를 일시적으로 이끌어가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감히 넘어서지 못할 영역이다.
 
‘하늘에 해는 두 개가 없다’는 옛말처럼 하나의 해가 있으면 다른 하나는 달 이상의 처신을 할 수가 없다. 따뜻한 볕은 오로지 하나의 해에서만 나오는 것이다.
 
이런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리더십이 한화그룹의 고난 속 약진을 이끌어내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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