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이 총수 유고로 비상경영체제가 5개월째 가동되고 있다.

김승연 회장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 등 혐의로 기소돼 지난 8월 1심에서 징역 4년과 벌금 51억원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이후다. 김 회장의 구속은 이번이 세번째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26일 전경련을 찾아가 가진 회장단과의 간담회에도 김 회장은 참석할 수 없었다.이건희 삼성회장, 김준기 동부회장, 이웅렬 코오롱 회장 등 해외 출장중인 회장들을 제외하고는 이례적으로 전원이 참석한 자리였다. 

한화그룹은 지난 10월9일 창립 60주년을 맞았지만 ‘회장없는 쓸쓸한 환갑’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자축 대신 긴장감 속에서 보낸 하루였다.

한화측은 지난달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에 보석신청을 내면서 법원이 대기업 총수에 대해 온정적으로 판결해온 지금까지의 관행대로 병보석으로 풀려날 것을 내심 기대했으나 기각되자 실망한 가운데 상당기간 총수의 ‘옥중 경영‘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약속했던 대기업 총수의 불법행위에 대한 집행유예나 사면 금지 공약이 빈말로 끝날 것같지는 않은데다 최근 재벌개혁 등 경제민주화에 대한 여론이 거세게 일고있고 법원이 재벌 총수 일가의 범법행위에 대해 엄격한 판결을 내리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종전처럼 ‘경영공백 우려’, ‘나라 경제 기여’ 등을 이유로 한 선처주의 판결을 더 이상 바랄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김 회장이 박 당선인과 장충초등학교 동기동창으로 어느 정도 친분을 유지하고있다는 얘기가 있지만 이는 김 회장의 현 처지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게 분명하다.

런던 올림픽 사격에서의 금메달 획득도 그의 처지를 바꾸지 못했다.

1심 재판부가 판결문에서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적시할 정도로 김 회장은 그룹 경영을 좌지우지하면서 진두지휘를 해왔다. 따라서 김 회장의 부재로 그룹이 비틀거리는 게 아니냐하는 우려가 그룹 내외에서 제기됐으나 예상과는 반대로 승승장구란 말이 나올 정도로 순항하고 있어 재계의 화제가 되고 있다.

해외건설 수주에서 현대건설과 1위를 다투는 등 여러 분야에서 선전하고 있다.

한화건설은 지난달 사우디아라비아 국영석유회사인 아람코가 발주한 5억8000만달러 규모의 해양터미널 공사를 수주하는 등 올 한해 83억9000만달러의 해외 공사를 수주했다. 내로라하는 대형건설사들을 제치고 현대건설을 턱밑까지 쫓고있는 것이다.

한화건설은 내친 김에 2015년까지 해외에서 매년 20%이상 매출성장률을 유지해 해외부문 비중을 40%까지 올리겠다는 야심찬 계획도 마련했다.

한화생명은 지난 26일 인도네시아 생명보험회사인 물티코의 경영권을 인수하는데 성공했다.국내 보험사중 첫 해외 M&A 사례다. 한화생명은 중국에서도 합작생보사 ‘중한인수보험유한공사’의 영업본인가를 획득해 최근 영업을 시작했다.

2008년 중국보험시장에서 외국계 보험사 진입이 중단된 후 처음으로 영업인가를 얻은 외국계 생보사라는 기록도 세웠다. 국내 보험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는 판단하에 해외에서 활로를 찾는데 앞장 선 덕이다.

지난 10월에는 독일의 세계적 태양광업체 큐셀 인수작업을 마무리짓고 한화큐셀로 새출범시켰다. 이에 따라 한화그룹은 세계 3위의 태양광사업자로 올라섰다.

김회장 구속이라는 악재에도 하반기 신입사원공채에 5만2500여명의 지원자가 몰려 젊은 층이 외면할까 마음 졸이던 그룹 담당자들의 걱정을 덜기도 했다.

프로야구 한화이글스는 김응용 전 삼성라이온즈 구단 사장을 감독으로 영입, 상위권 진입을 노리고 있다.
김 회장은 경영현장에 없지만 그가 내세운 글로벌 경영전략은 하나씩 열매를 맺고 있다는게 재계의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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