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르곤 이야기 외전] 중국의 마지막 태황태후 효장문황후

 청태종의 아내 효장문황후 박이제길특씨는 중국 역사상 마지막 태황태후의 지위를 누렸다. 황제의 할머니로 군림한 마지막 여인이란 얘기다.

 
▲ 청태종 홍타이치의 후궁이자 세조 순치제의 생모 효장문황후. 그녀는 중국 역사상 마지막 태황태후로 손자 성조 강희제의 초기 치세에서 든든한 후원자였다.
75세의 생애 동안 6살 아들 순치제가 황제가 되고 8살 손자 강희제가 뒤를 이을 때마다 이들의 최고 수호자 역할을 했다. 연거푸 어린 임금이 등장하는데 권력의 탐욕스런 이빨을 드러낸 약탈자들이 없을 리 만무했다. 특히 손자 강희 즉위 후에는 누구보다 충성스런 가신이었던 오배의 찬탈 위협에서 가문과 나라를 지켜야 했다.
 
그녀의 든든한 보살핌을 받은 황제들은 지위를 굳건히 한 후 나라의 강토를 만주에서 중국 대륙, 서역으로 넓혀나갔다. 이렇게 왕실의 최고어른이지만 그녀는 죽음에 임해 손자 강희제에게 의아한 유언을 남겼다.
 
“오랜 세월 지나 태종의 묘역에 가기 번거로우니 손자가 갈 곳에 미리 묻어주면 좋겠다.”
그녀는 훗날에 조성된 청나라 황실 묘역에서 바깥쪽에 안치돼 있다고 한다. 살아서의 최고어른 지위와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여러 가지 배경 설명이 있는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그녀의 ‘개가(改嫁) 관련설’이다.
 
그녀 나이 30세인 1643년, 남편인 태종 홍타이치의 급서는 무시무시한 피의 폭풍을 예고하고 있었다. 2인자이며 홍타이치의 이복동생인 예친왕 도르곤의 세가 가장 우세했지만 홍타이치의 장자 호격의 기세도 만만치 않았다. 삼엄한 분위기 속에 진행되는 의정회의에서 일단 후계자가 정해지면 나머지 잠재후보들의 목숨이 붙어있을지는 아무도 장담을 못했다. 효장의 6살 아들 복림도 예외는 아니었다.
 
결렬을 거듭한 의정회의 결과는 뜻밖이었다. 그 어린 복림이 새롭게 일어나는 청나라 제국의 새 주인이 됐다. 황제가 어려 이를 후견하는 섭정왕에는 도르곤과 지르하랑 두 친왕이 지명됐다.
 
실질적인 도르곤의 승리였다. 실권이 없는 지르하랑의 공동섭정은 허울 뿐임이 시간이 갈수록 분명해졌다. 다만 제위 자체는 중립의 복림에게 돌아가 반 도르곤 파를 달래는 발판이 됐다.
 
만주 최고의 영웅에게 의지하게 된 힘없는 여인 효장과 6살 복림. 모자의 운명은 도르곤의 아침저녁 변덕에 얼마든 최후를 맞을 수 있는 상태였다.
 
▲ 중국드라마 대청풍운에서 정상의 여배우 쉬칭(許晴)이 효장문황후 역을 맡았다. 이 드라마는 효장과 도르곤을 원래 연인 사이로 설정했다. 사극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탁월한 설정이지만 이는 허구다. 쉬칭의 미모는 한국의 김혜수, 일본의 나가타니 미키와 비슷하다. 정상급 연기파 미녀들의 전형적인 이미지인 듯하다.
그러나 효장 모자가 도르곤으로부터 절대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중대한 상황변화가 일어난다. 효장이 도르곤과 다시 결혼한 것이다. 도르곤이 원래 효장을 사모해 개가를 강요했는지, 아니면 효장 스스로 아들의 안전과 황권을 위해 도르곤에게 먼저 접근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임금의 여인이 남편 사후 정조를 지키지 못하고 비록 황족이라 하나 그 신하되는 사람에게 개가한다니... 비록 청나라의 모체인 만주 유목민의 형사취수 풍속이라해도 이미 중원과 같은 유교국가를 지향하고 있던 청나라 황실에서는 매우 민망한 일이었다.
 
어떻든 효장은 이제 최고 권력자 도르곤의 여인이 됐다. 도르곤의 호칭도 곧 황숙(皇叔)섭정왕에서 황부(皇父)섭정왕으로 격상됐다.
 
중국의 거장감독 첸지아린(陳家林)은 드라마 ‘대청풍운’에서 도르곤과 효장이 원래 연인사이였다는 멋진 작가적 추측을 곁들이기도 한다. 무자비한 권력자 홍타이치가 몽고 최고미녀 효장을 아내로 차지해 도르곤에게는 어머니의 원수, 사랑의 원수가 된다는 설정이다.
 
하지만, 이는 정말 작가적 상상력이 만든 허구다. 물론, 사극으로서는 너무나 멋진 설정이다.
 
요즘 일부 사극 제작자들은 역사에 대한 기본 공부조차 안된 것을 ‘사극이기 때문’이라고 둘러대는데, 진정한 사극은 역사에 작가의 탁월한 문학적 상상력을 덧붙이는 것이다. 개연성도 떨어지고 사건의 전후관계도 안맞는 저질 판타지물은 절대 사극이 아니다.
 
‘꽃들의전쟁’에서 인조의 후궁 조씨가 젊을 때 애인을 헤치는 등 곳곳에서 악독함을 작렬하는 설정은 사극으로서 탁월한 연출로 평가한다. 다만, 한국에서는 사극이 너무나 창의력을 발휘할 경우 ‘조상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일부 문중의 항의를 받기도 한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한국적 현실이다.
 
▲ 효장문황후 소생인 청나라 3대황제 세조 순치제. 누르하치, 홍타이치 등 선조들의 투박한 장군 이미지는 사라지고 귀하게 자란 귀공자의 면모가 가득하다.
어떻든 도르곤과 효장, 복림의 단란한(?) 로열 패밀리는 1650년 도르곤의 갑작스런 사망 전까지 이어졌다.
 
도르곤은 사냥에서 불의의 사고로 중상을 입고 죽었다는데 개인적으로는 정변이 발생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도르곤이 죽은 후 급격히 격하돼 부관참시까지 당한 점이 이런 의심을 더욱 부추긴다. 하지만 정변설을 제기하는 전문가들의 의견은 아직 접해보지 못했다.
 
보호자이면서도 최대 위협자였던 도르곤의 사망으로 별다른 위협 요인이 없을 복림이었지만 그도 23세에 갑자기 승하한다. 사랑의 열병으로 사실은 머리깎고 출가했다는 소문을 남긴 채.
 
청나라 황실은 또 다시 8살 소년을 용상에 앉혀야 했다. 유모가 없이는 아무데도 안가겠다는 어린 손자황제를 지켜내는 건 또다시 효장의 몫이 됐다. 아들의 안전과 보위를 지키려고 정조까지 포기를 했는데 또다시 이런 일을 해야 하다니... 
 
더구나 어린 황제를 보필하라는 보정대신 4명중 무공이 가장 뛰어난 오배가 노골적으로 제위를 위협했다. 그는 도르곤의 위협에서 가장 목숨 걸고 순치를 지켜냈던 충신이었다.
 
자금성 안팎에 수많은 피를 뿌리고 오배가 실각한 후에도 오삼계 등 3번의 난, 대만-몽고의 반란이 지속됐다. 이제 막 대륙의 새 주인이 된 이민족 황실에게는 하나하나가 새로 나라를 일으키는 것과 같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만약 황실의 멘토로 자녕궁을 든든하게 지켜준 효장태후가 없었다면, 청나라 황제들은 거듭되는 시련을 누구에게서 위로받았을까.
 
징기스칸은 젊은 시절, 부락이 유린당해 숲으로 숨어들어가서 그 좋은 유목민의 시력으로 아내 볼테르가 겁탈당하는 장면을 생생히 지켜봤다고 한다. 천하 모든 것을 다 가진 영웅이었지만 그의 장자 주치가 과연 내 아들이 맞을까하는 의구심은 영웅의 뇌리에서 한번도 벗어날 수가 없었다. 아내 하나 지켜주지 못했고 남의 아들을 키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굴욕을 극복하면서 징기스칸은 동서양을 통합한 유일한 영웅으로 성장했다.
 
신분은 황제의 여인이지만, 그럴수록 정조를 버려야 했던 효장의 굴욕은 여인으로서 참으로 견뎌내기 힘든 일이었다. 이 굴욕의 댓가로 그녀는 우선 아들의 목숨을 구했다. 죽어서 차마 남편을 찾아가기 부끄러운 삶이었지만 그로 인해 후손들은 300년 동안 중국 역사상 가장 강한 힘과 유능한 통치력을 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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