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산업은행에 대한 국회 정무위원회의 국정감사는 어설픈 민간화 추진 과정에서의 폐해를 그대로 보여줬다. 민간 예금을 유치한다고 높은 이자를 줘가며 예금을 끌어와 놓고는 돈을 굴릴 데가 없어 수조원의 막대한 자금에 대한 이자만 물고 있는 현실이다. 그런가하면 지방에서는 지역은행의 대출고객을 이자로 꼬셔가며 빼내간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엊그제까지 고위 관료였던 사람이 낙하산을 타고 부임해와서는 회장이란 직함을 누리면서 무수한 자회사를 거느리며 어설픈 재벌 흉내도 내고 있다. 정치권에서 경제민주화 바람을 선도하고 있는 이혜훈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산업은행 때문에라도 금산분리를 철저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산업이 금융을 지배하는 것을 금지하는 만큼 금융이 어설프게 산업을 지배하는 것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최고위원은 “채권만 만들어 팔던 사람들이 기업 경영에 대해 무엇을 알겠는가”고 꼬집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국회의 산업은행에 대한 국정감사는 예전보다도 빈약한 수준으로 축소돼 국회마저 스스로 직무에 역행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산업은행을 추궁한 결과, 산업은행은 다이렉트예금이란 상품을 통해 무려 5조원이 넘는 예금을 끌어 모아놓고는 고작 411억원만 운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5조원은 4%를 훌쩍 뛰어넘는 이자를 줘가며 유치한 돈이다. 시중은행의 자금조달 금리 2%의 두배를 넘는 이자를 주며 조달한 돈이면 운용금리 또한 그에 맞게 높아져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이자의 높고 낮음을 따질 것도 없이 아예 돈 자체를 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강만수 산업은행장이 내놓은 답변은 “시작한지 얼마 안돼서 그렇다. 앞으로 신용보증기금과 협약을 통해 진행하겠다. 요원을 100명으로 늘려놓았다”는 것 뿐이다.
 
그러나 다이렉트예금은 산업은행의 전통적 자금조달 수단인 산업금융채권에 비해서도 조달금리가 1%포인트 이상 높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국책금융기관 본연의 길을 가고 있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논란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국정감사에서 김기준 민주통합당 의원은 “산업은행이 지방은행의 대출 거래처를 싼 이자로 빼내 오고 있다”며 “이로 인해 시장교란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질타했다. 김기준 의원은 강만수 행장에게 “민영화는 반대한다면서 IPO는 왜 하나”라며 앞뒤가 안맞는다고 꼬집었다.
 
산업은행이 금융지주화된 이후 이렇게 예전에 거론된 적도 없는 문제들이 속출하고 있는데 국회는 오히려 산업은행에 대한 국정감사 비중을 대폭 축소했다.
 
17대 국회만 해도 산업은행에 대한 국정감사는 재정경제위원회가 하루를 모두 산업은행에만 쏟아 부어 국정감사를 실시했다. 국회의원들이 직접 산업은행으로 가서 진행했다.
 
국회에서 진행된 19대 국회의 국정감사는 산업은행장만 출석한 게 아니다. 신용보증기금 정책금융공사 산업은행 기업은행 4개 기관을 모두 묶어 하루만 실시했다.
 
이렇다보니 국회의원들은 많은 문제를 제기했지만 답변을 제대로 들을 수 조차 없었다. 하루를 쪼개 4군데 기관을 감사해야 하니 KDB산업금융지주의 자회사 실태는 건드리지도 못했다.
 
최근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산업은행의 신용등급을 한국의 국가등급과 같은 A로 유지했지만, 정부 지원 변수를 뺀 산은의 자체 신용도(SACP)는 bbb-에서 bb+로 강등했다. 투자등급에서 투기등급으로 깎아내린 것이다. 이유는 민영화 계획에 따른 불확실성 증가다.
 
사정이 이런데 국회의 감시는 거꾸로 가고 있다. 올해는 정치권의 관심이 오로지 양대선거에 몰려있기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내년부터는 국회의 감시기능이 예전보다 더욱 철저해 져야 한다는 요구가 절실해지고 있다. 그런데도 오히려 전보다도 부실한 감시를 하고 있다면 이는 국회의 직무유기라는 비판을 피할 길이 없다는 지적이다.
 
저작권자 © 초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