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는 ‘금융회사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법률 제·개정에 관한 공청회’가 열렸다. 금융회사 대주주의 도덕적 해이와 불법, 탈법을 막기 위해 정부 뿐만 아니라 여러 국회의원들이 관련 법안을 내놓고 있는 상태다.

 
강력한 장치 마련을 주문해 온 정순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김우찬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가 진술인으로 출석했다. 이에 맞서 업계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마상천 은행연합회 상무와 이승준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이 나왔다.
 
마상천 상무는 “사외이사 제도의 취지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사외이사가 자기 권력화되는 것은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기식 민주통합당 의원이 “실제로 그와 같은 사례가 있는가”고 물었다. 관련 법안을 제출한 김기식 의원은 참여연대에서 금융개혁 운동가로 이미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막상 김 의원의 질문을 받자 대답을 못하고 있던 마 상무는 우물쭈물한 끝에 내놓은 대답이 어처구니없게 “모 금융지주, 이를테면 KB나 신한금융”이라고 말을 흐렸다. 본지가 현재 금융개혁 시리즈를 연재하는 결정적 계기를 만든 장본인 라응찬 전 회장의 신한금융지주를 사외이사로 인해 경영권이 피해를 본 사례로 제시한 것이다.
 
김기식 의원은 진작부터 자신의 법안 주요 내용 거의 모두에 대해 반대 의견을 내놓은 마 상무에 대해 벼르고 있던 터다. 그런 김 의원에게 금융권 최대 파문을 몰고 온 당사자를 피해 사례로 제시한 것이다.
 
김기식 의원은 “그게 사외이사 문제냐”고 따지며 “라 모씨(라응찬 전 회장)가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는 게 올바른 일이냐”고 몰아붙였다.
 
그는 마 상무에게 “(신한금융지주는) 몇십년 동안 황제처럼 군림해 온 곳인데 사외이사 제도에 대해 이해는 하고 있는가”고 질책했다.
 
이어 김 의원은 “신한 사례가 사외이사를 두면 안되는 경우냐”고 따지자 제 입으로 신한금융을 거론했던 마 상무는 “은행연합회에서 특정 은행 사례를 말하기가 곤란하다”고 딴전을 부렸다.
 
계속해서 김기식 의원은 “후임행장이 자기 말을 제대로 안 듣는다고 몰아내 형사재판까지 진행 중인 곳”이라고 질타를 계속했다.
 
마상천 상무는 연이은 호통에 이성을 조금이나마 되찾은 듯 “사외이사는 당연히 필요한 것이고 점차 개선돼 가야 할 문제”라고 변명했다.
 
그러나 김 의원은 마 상무가 공청회 서두에서 제시한 모든 의견을 종합해 “마 상무의 의견은 사외이사 제도가 있을 필요가 없다는 소리”라고 꼬집었다.
 
마 상무가  “오해가 계신 것 같다”고 발뺌했지만 신한금융을 제 입으로 먼저 거론한 마당에서는 부질없는 변명에 불과했다.
 
▲ 9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공청회에 출석한 진술인들. (앞줄 왼쪽부터) 정순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마상천 은행연합회 상무, 김우찬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이승준 보험연구원 연구위원. 정 교수와 마 상무 사이로 추경호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보인다.
 
김기식 의원은 이어 이승준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에게도 “세상에 배임횡령을 저지른 자가 금융회사의 경영자로 남는 사례가 다른 나라에서도 존재하는가”고 따졌다.
 
이 연구원이 아무 말도 못하고 어색한 시간만 자꾸 흘러가자 민주통합당의 이상직 의원이 “말도 못하고 있지 않냐”라며 김 의원에게 계속 토론을 진행할 것을 권유했다.
 
김기식 의원의 질타가 지속되자 김정훈 정무위원장이 나서서 “오늘 출석한 사람들은 증인이 아니고 진술인이니까 너무 심하게 야단치지 마시라”고 말리자 회의장에 웃음이 터지면서 김기식 의원의 시간이 종료됐다.
 
그러나 아무리 은행권의 이해를 대변하는 은행연합회라고 해도, 공공성이 강조되는 은행업에서 심각한 물의를 빚은 인물이 무심결에 피해자처럼 거론되는 것은 무분별한 언동의 극치일 뿐만 아니라 업계 고위층의 기본 철학이 피폐함을 드러낸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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