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경제 장경순 편집장] 김성한의 소설 고려태조 왕건의 일부부터 소개한다.포석정을 습격해 신라 경애왕을 죽인 견훤의 살기가 경주 시내를 짓누르고 있었다. 비어있는 왕위에 견훤은 김부를 앉혔다. 김부는 화랑 김효종의 아들인데 김효종은 대야성 전투에서 견훤에 대항해 끝까지 저항하다 순국한 용사다. 견훤은 “나는 용사를 좋아한다”며 김부를 왕위에 앉힌 것이다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스티브 발머는 빌 게이츠의 후계자로 마이크로소프트(MS)를 이끄는 동안 ‘창의성과 활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심지어 게이츠나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이크 주커버그 등 IT 거물들의 집무실이 창고처럼 어지러운 반면 발머의 집무실이 장관 집무실처럼 정리정돈이 잘 된 것도 그가 이 세계와 맞지 않는 이유 가운데 하나라는
[초이스경제 장경순 편집장] 중국 춘추시대 수백개 나라 중에 꽤 유명한 나라가 기나라다. 국력은 정말 보잘 것 없는 약소국이 수 천 년 지난 오늘날에도 잘 알려진 것은 ‘하늘 무너지면 어떡하나’라는 걱정을 했기 때문이다. 기우(杞憂)라는 말을 만들어낸 바로 그 나라다. 기나라는 하늘이 무너져서가 아니라 땅위의 초나라한테 망했다.중국의 민족이 통일국가로 통합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한나라는 개국고조 유방이 항우를 물리치고 통일했지만 이제는 흉노의 침략에 시도 때도 없이 시달리는 처지가 됐다. 군사력도 부족하지만 유목민족인 흉노는 어디 특정한 지점을 목표로 공격할 수도 없었다.궁여지책으로 고조부터 흉노의 임금인 선우에게 딸을 시집보내는 것으로 일시적인 평화를 얻는 일을 반복했다. 그러나 황제의 마지막 체면을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1970년대. 장준하 교수와 젊은 재야운동가 백기완이 함께 유치장에 갇혔다. 이층침대 아래 칸의 백기완이 위에 대고 한마디 했다.“영감, 이번에 나가면 한 마리 하셔야지요.” 위 칸의 ‘영감’ 장 교수가 힘없이 대답했다. “그러자” 두 사람이 석방되자 약속대로 보신탕집에 자리를 하고 앉았다. 그러나 원래 장준하 교수는 보신탕을 못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영화 고전 ‘발지 대전투’에서 독일 전차병들의 합창(Panzerlied)은 유명한 장면이다. 유투브에서 이 동영상을 찾아서 내 페이스북에 공유했다.올려놓고 보니, 독일인 친구가 떠올랐다. 한국에 와서 환경운동을 하는 이 친구에게 “우리나라 사람들은 독일에 대해 매우 정확하고 철저하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대한축구협회 게시판에는 팬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의견코너가 없다. 스포츠 또한 전문가의 영역이므로 어중이떠중이의 무분별한 댓글에 공간을 낭비하지 않겠다는 의도인지는 모르겠다.만약 축구협회가 순수하게 축구 동호인들만의 회비를 모아서 운영하는 곳이라면 무슨 짓을 마음대로 한들 누가 상관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축구협회는 1년 예산
[초이스경제 장경순기자] 지난 1994년 여름, 기자가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학교에 큼직한 일이 두 가지 있었다.그해 미국 월드컵의 축구 경기장 가운데 하나를 학교가 제공했다. 여름 방학 중인데도 전혀 방학 같지 않은 그해 여름이 됐다. 교내 서점이 서울의 교보문고와 비슷할 정도로 큼직했는데 여기에 참가 24개국의 국기가 걸렸다. ‘도하의 기적’으로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1071년 고려 문종이 거란족의 반발도 무시하며 송나라와 수교한 이래 19세기 말까지 거의 1000년 가까이 지속된 한중 외교지만, 오늘날과 같은 정상회담이 정식으로 열린 것은 단 한차례도 없다.두 나라 임금이 얼굴을 마주 대한 적이 한차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는 삼전도에서 조선의 인조가 청나라 태종에게 항복을 한 자리이므로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역사드라마에서 몇 번 정도전이란 인물에 비중을 맞추다보니 이 사람의 불행한 최후를 마치 고구려 패망만큼이나 아쉬운 장면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조선 건국 초기 여러 가지 제도를 구상하고 추진한 인물이고 특히 출중한 학문으로 경복궁의 무수한 전각에 이름을 지은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실 그가 구상했던 행정과 법제에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지금처럼 진영논리, 또는 정파논리가 극성을 부리는 한국의 여론사회에서는 조금이라도 정치와 관련된 주제에서 중립적 입장을 자처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국무총리 후보자를 사퇴한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의 역사관에 대해 저마다 이런저런 의견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그 어떤 다양한 의견이라도 그가 후보자를 사퇴하기 전에는 오로지 두 가지
한나라의 행정 기틀을 다진 초대승상 소하가 죽자 조삼이 뒤를 이었다. 이때는 이미 개국 황제인 한 고조가 죽고 아들인 2대 효혜황제의 치세였다.조삼 또한 한나라 개국에 큰 공을 세운 선대의 공신이었다. 비록 군신지간이라도 젊은 황제가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국가의 원훈이다. 문제는 새 승상 조삼이 전혀 일을 안하고 술만 마신다는 거였다. 그의 관저 주변에 젊
국회의원들이 회의 때 자리를 비운다고 해서 비난하는 일이 자주 벌어진다. 상임위 회의 때는 회의 성립을 위한 인원이 부족해서 이미 출석한 의원들이 다른 의원을 기다리는 때도 있다. 막중한 의정 대임을 맡은 사람들이 자리를 비우고 할 일을 안하는 건 국민 누구나 비난할 권리와 사명이 있다. 그렇다면, 의원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때 하는 일은 과연 어떤 것들
옛날 관리들은 임금이 왕도에서 벗어났을 때 목숨을 걸고 간하는 선비 정신을 중요한 덕목으로 여겼다. 그런데 문제는 목숨을 건 충간(忠諫)이 마치 벌의 침과 같다는 것이다. 벌은 침을 한번 쏘고 나면 목숨을 잃는다.정말로 청사에 길이 빛날 충신으로 이름을 남길지도 불확실하지만, 일단 그날이 자신의 제삿날이 되면 임금이 다음에 더 큰 잘못을 해도 이를 막을 길
고려 희종 때 개경 시내에 괴소문이 돌았다.당대의 실력자 최충헌이 대궐만한 집을 지으면서 남자아이 5명과 여자아이 5명에게 오색 옷을 입혀 집터의 네 귀퉁이에 묻는다는 것이었다. 이 소문을 틈타서 최충헌 측근 행세를 하며 어린 애를 유괴해 부모에게 돈을 뜯어내는 사건도 속출했다. 아이를 가진 부모 중에는 무서워서 먼 곳으로 도망가는 사람도 있었다. 최충헌은
한고조 유방의 군대가 진나라 아방궁에 입성했다. 모든 사람들이 금은보화를 찾아다녔지만 소하(蕭何)는 진나라의 모든 서류철과 지도를 찾아서 확보했다. 그가 얼마나 국정관리에 몰두했는 지를 보여주는 얘기다.초한동란이 지속되는 동안 소하는 천하의 도읍이며 비옥한 관중 일대를 지켰다. 최전선에 병력과 양식을 차질없이 보급하는 임무를 빈틈없이 수행했다.항우와 목숨을
로마의 첫 번째 황제 옥타비아누스는 79세까지 통치했다. 그가 다스리는 동안 14명의 황태자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이원복 만화가의 유명한 만화책 ‘먼나라 이웃나라’ 로마 편에서 저승으로 떠나는 태자가 친구에게 “나 먼저 가네. 젠장, 영감 되게 오래 사네”라는 한 마디를 남긴다.아무리 79세가 그 시대 장수라고 해도 14명이나 되는 태자가 앞서 죽은 것은
신봉승의 역사소설 ‘조선왕조500년’(같은 이름의 드라마로 10년동안 방영된 작품의 원작)에 나오는 장면이다. 비록 소설 속의 각색이지만 당시의 정치 상황을 너무나 정확하게 나타내고 있다.태조 이성계가 세자로 막내아들 방석을 임명하자, 이 자리를 탐내던 다섯째 아들 방원(태종)은 술에 찌들어 화풀이를 하고 있었다. 이때 방원의 최고 참모 하륜이 등장해 한마
박씨와 척씨부인.한 사람은 남편의 사랑을 못 받다가 아들이 귀하게 돼서 자신도 지극히 고귀한 신분으로 상승한 성공반전의 주인공이다. 또 한 사람은 젊어서 남편의 지극한 사랑을 받았지만 중국 역사상 가장 처참한 질투의 희생자가 됐다.그렇다고 두 사람이 직접 시앗싸움을 벌인 건 아니다. 이 두 여인의 인생은 또 하나의 여인 여치를 중심으로 희비가 엇갈렸다.여치
집권 초의 지지층이 탄탄하기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박근혜 대통령을 훨씬 압도했을 것이다. 대통령 선거 자체를 기록적인 표차로 누르고 제1야당을 3분의1 의석 아래로 떨어뜨렸을 정도로 집권 초 그의 지지도는 심리적으로 3분의2 이상에 달했다. 그랬던 사람의 결과는 오늘날 뉴스를 통해 익히 드러나는 초라하기 이를데 없는 수준이다. 이명박 정권의 참 이상한 특